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자신을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 비유하는 장면은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었다.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의 창업주이면서 억울하게 쫓겨났다며 애플의 잡스로 여기는 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상황적으로나 본질적으로 비유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우선 상황을 보자. 잡스는 애플Ⅰ으로 대박을 터뜨린 뒤 맥킨토시를 개발했으나 완전히 실패했다. 판매량은 2만 대에 불과했는데 미리 8만 대를 만들었다. 경영부담이 엄청났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신제품 매킨토시가 기존 제품 애플Ⅰ과 프로그램 호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잡스는 모든 잘못을 개발팀과 자신이 영입한 펩시콜라 출신의 CEO 존 스컬리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다. 경영 논리에 의하면 잡스의 퇴출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잡스도 자신의 퇴출을 이해하려고 애썼을 뿐 잘못됐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안 의원의 잡스 비유는 실제 상황과 상관 없이 잡스의 신화적 명성에 기댄 의도된 착각일 따름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안 의원은 잡스가 CEO로 영입한 스컬리다. 잡스는 몸과 영혼을 바쳐 만든 '작은 우주' 애플에 경영능력을 수혈했다. 정권을 잇따라 뺏기고 활력을 잃은 민주당이 안철수의 새정치를 수혈한 상황에 비견된다. 정치 3년 차인 안 의원이 새정치연합에 혹은 정치에 영혼을 바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애플을 정통 민주당(혹은 새정치연합)에 비유한다면 민주당 혹은 새정치연합의 잡스는 야당의 발전에 자신의 정치인생을 온전히 바친 사람이 적절할 것이다. 안 의원의 새정치연합 잡스 운운은 주제넘은 착각이다.
안 의원이 자신을 혁신의 화신이라고 여기거나 국민이 그렇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착각이다. 안 의원은 탈당의 이유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혁신 거부를 들었다. 그러나 그가 내세운 혁신의 내용인 낡은 진보 청산, 당내 비리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 등은 구호일 뿐 핵심은 '문 대표의 퇴진'임을 국민들은 다 안다. 당 혁신위가 가동 중인데 '당의 혁신 실패' 주장이나, 문 대표 퇴진을 전제로 한 '혁신 전대' 요구는 모두 '혁신 프레임'에 기댄 문 대표 퇴진 주장에 다름 아니다. 당이 절체절명의 위기라면 대표에게만 '담대한 결단'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부터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대선 후보를 양보했으니까, 자신도 선거 7·30재·보선 패배 직후 대표직에서 사퇴했으니까 문 대표도 4·29재·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안 의원은 혁신을 단지 당권 투쟁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다.
안 의원이 아직도 '새정치'의 상징인 양 여긴다면 이것도 큰 착각이다. 민주당에 안 의원의 새정치를 수혈한 새정치연합이 도대체 뭐가 바뀌었는가. 안 의원의 새정치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 이를 아는 국민은 없다. 스컬리의 경영능력은 잡스의 약점을 보완해 애플을 10년간 정상권으로 유지시켰다.
안 의원은 엊그제 자신의 싱크탱크와의 송년회에서 "새정치의 소중한 불씨를 활활 태워서 정권교체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또 "새정치는 이제 이 세상의 기득권과 낡은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한다"며 새정치를 전가의 보도처럼 들어올렸다. 홀로 선 안 의원이 결연히 의지를 다지는 데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묻고 싶은 게 있다. '새정치가 도대체 뭐냐고'.
안 의원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혁신이나 새정치에 있다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안 의원의 지지층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핵심지지층을 제외한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세력과 중도·무당층이 주류를 이룬다. 안 의원 탈당 뒤 새정치연합층엔 20~40대의 지지가 강화되는 반면 안철수 신당은 문재인 체제를 반대하는 50, 60대의 지지자가 많았다.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지지자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안 의원(신당)에 대한 지지가 개혁이나 혁신, 새정치와 큰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안 의원이 새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실천없이 독자 신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큰 착각이다. 내용도 실체도 없이 단지 새정치라는 구호로 국민을 유혹하는 것도 일종의 혹세무민이다. 정권교체 세력의 수장을 자처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브랜드인 새정치의 실체를 국민이 알게 해줄 의무가 있다. 실체 없는 안 의원의 새정치에 국정을 맡길 만큼 국민은 어리석지 않다.
안 의원은 새정치에 대한 꿈을 새정치의 실체로 착각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안 의원이 정권교체를 이루려면 먼저 이 꿈에서 깨고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정치 구호를 실체로 채우고, 혁신 정당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자칫하면 정권교체는 고사하고 보수정권을 영속시키는 지렛대로 전락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