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플라톤이 구축한 철학체계가 워낙 넓고 깊어 오늘날까지 서구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리학에도 이와 유사한 명제를 만들 수 있다. '우주론은 아인슈타인의 해석에 불과하다'. 근대 우주론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으로 탄생했고, 아직도 중력장 방정식 없이는 우주의 비밀에 좀체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25일로 일반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지 꼭 100년이 되었다. 당시 일반상대성이론의 결정체인 중력장 방정식을 본 동료 물리학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물리적 직관과 수학적 기교, 그리고 철학적 통찰이 결합한 한 편의 예술작품이라고 표현한 사람은 막스 보른이다. 우주에 대한 인간 사고의 위대한 향연이라는 상찬도 나왔다. 결코 과찬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듬해 슈바르츠쉴트가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마술의 원'(블랙홀)의 존재를 도출했다.
1919년 에딩턴의 일식 관측에 의해 빛이 휜다는 아인슈타인의 혁명적인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1922년 프리드만은 중력장 방정식을 통해 우주가 팽창한다고 예측했다. 5년 후 허블은 그 사실을 확인했다. 공상으로 취급됐던 빅뱅가설이 우주론의 표준이 된 것은 이로부터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은 우주의 비밀에 들어가는 문에 비유된다. 문을 여는 열쇠는 따로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열쇠로 열면(풀면) 새로운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있게 된다. 100년이 된 오늘날까지 수많은 천재가 중력장 방정식의 문을 열어 우주의 비밀을 들여다보려고 애쓰고 있다.
17세 천재소년 물리학도 송유근 군도 그중의 한 사람. 송 군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이 '일반상대성이론의 천체물리학적 응용'이다. 천체물리학은 별과 항성계의 물리적인 상태와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의 한 분야. 천체가 우주의 구성물이니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연구하는 우주론과 큰 차이가 없다. 우주론은 현대 물리학의 총집합체로 노벨물리학상도 자주 나온다.
송 군이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다는 소식은 설렘과 기대를 갖게 했다. '아인슈타인처럼 우주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송유근 방정식, 100년 넘게 가는 방정식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포부에 박수가 절로 나왔다. 박사논문 외에 두 석 달 안에 두 편의 논문을 더 발표할 것이라고 하니 '천재성 폭발'의 전조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바람을 갖기도 했다.
설렘과 기대가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으로 변하는 데는 며칠도 걸리지 않았다. 천재 물리학도가 표절이라니.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참담함이란.
표절 판정을 받은 논문은 박사학위 심사 청구 요건으로 미국천문학회(AAS)의 천체물리학저널(ApJ)에 제출한 '축대칭, 비정상 블랙홀 자극'이다. 당초 ApJ는 이 논문을 10월 10일자로 게재했다가 국내에서 표절 의혹이 일자 학회 차원의 검토 끝에 지난 25일자로 게재 철회 결정을 내렸다. 철회 이유는 '박석재 연구위원이 2002년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학술대회에 제출한 발표문(proceeding)에서 광범위하게 내용을 가져왔기 때문에 저작권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인 박석재 박사는 이 논문의 제2 저자이자 송 군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다. 따라서 박 위원이 학술대회 발표문을 자신이 제2 저자인 제자의 논문에 무단 인용한 자기표절(Self-Plagiarism)이라는 것이 미국천문학회의 판단이다.
천재소년 물리학도를 만신창이로 만든 표절 파문의 근원은 지도교수의 자기표절으로 결론났다. 헌데,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에서 '닮고 싶은 과학기술인상'까지 받은 박 위원이 자기표절이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술대회 발표문은 논문으로 보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에 의한 실수라는 해명은 납득할 수 없다. 학문 윤리와 논문 작성 상식에 정면 배치되는데 고정관념이라니.
박 위원도 인정했듯이 서둔 게 화근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하루빨리 더 넓은 무대에서 능력을 발휘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박 위원의 고백을 믿고 싶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최연소 박사' 배출의 조명에 대한 지도교수와 대학의 욕심도 작용했다고 본다. 어른들의 조급증과 욕심이 새싹을 짓밟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시각인 것이다.
송 군은 상처입은 마음을 하루빨리 다잡기를 바란다. 뭇 사람의 시기질투를 탓하기보다 논문 형식의 불비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최연소 박사'에의 미련은 털어버리라고 주문하고 싶다. 천재 아인슈타인도 26세가 돼서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천천히 가도 충분하다. 최연소 박사, 국민박사, 천재소년 칭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주의 비밀에 다가가는 새로운 문, '송유근 방정식'을 창안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