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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구석기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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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가 내리는 날이었어요. 우산을 들고 밭이랑을 살피며 걷는데 저만치서 누군가 내게 방긋하고 웃는 거예요. 놀랍고 반가운 마음에 가보니 인면문(사람 얼굴 모양)의 수막새 기와가 흙에 반쯤 묻힌 채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문화유적지 탐방과 유물 수집이 취미인 부산의 한 대학 교수는 주말이면 가족 소풍 삼아 경주를 찾았다. 절터 주변 논과 밭이 단골 탐방지다. 기와조각이며 사금파리를 줍다보면 옛날 사람과 시공을 초월해 대화하는 듯한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연구실은 수집품 박물관을 방불케 했다. 경주 교외의 한 밭에서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는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보는 '신라의 미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투박하지만 친근감이 느껴졌다. 기와에 문양을 새긴 사람은 이 얼굴과 어떤 관계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해방 공간에 선보인 영화 중에 전창근 감독의 '그 얼굴'이라는 작품이 있다. 사랑하는 아내가 불치의 병에 걸리자 조각가인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돌에 새겨 남기기로 결심한다. 아내의 병은 점점 악화하고, 남편은 괴로움 속에서도 아내의 얼굴 조각에 매달린다. 마침내 작품이 완성된 날 아내는 숨을 거둔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 조각을 어루만지며 오열한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뭔가를 종이에 쓰거나 흙이나 나무에 새긴다.  그러나 돌에 새기는 것은 좀 다르다.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지극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영화 '그 얼굴'의 조각가가 아내의 얼굴을 돌에 새긴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서였지 싶다.

3만5000년 전 충북 단양에서 살던 후기 구석기인이 돌에 새긴 얼굴 모양의 조각이 발견돼 화제다. 단양군 적성면 남한강가에 있는 후기 구석기 유적지인 수양개 6지구에서 지난해 출토된 유물을 정리하던 중 얼굴 모양의 돌 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손톱만 한 돌 파편에 새기개로 눈과 입을 긁어 새겼다. 입술은 인중의 골과 끝에 봉긋 솟은 모습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동물벽화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인물 새긴 돌 조각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당연.

돌에 얼굴을 새기는 마음은 조각하는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꼭 같을 것같다. 얼굴의 주인공에 대한 지극한 사랑. 털복숭이 원시인으로 상상했던 구석기인이 '신라의 미소'를 만든 신라인이나 영화 '그 얼굴'의 조각가와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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