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떠도는 난민이 50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만 한 규모다. 난민에 관한 한 부산은 인연이 깊다. 6·25 전쟁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수십만 명의 피란민을 수용한 것이 부산이다. 부산 토착민들도 궁핍하긴 매한가지였지만 '한 방 비워주기 운동' 등을 통해 포용의 문화를 키워온 것도 자랑스러운 부산의 문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국내 난민이었다. 부산 난민 유입사는 고대와 중세 역사에서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최근 일은 베트남 난민의 대규모 수용이다. 지금부터 40년 전인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전쟁으로 당시 남베트남이 패망하자 수많은 베트남인이 바다로 뛰어들어 보트피플 신세가 됐다. 철수하던 대한민국 해군 함정에 메콩 강을 떠돌던 베트남 난민 1355명이 승선해 같은 해 5월 부산항으로 입국하면서 베트남 난민의 부산 정착사가 시작됐다.
이들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위해 부산시와 대한적십자사가 서대신동 옛 부산여고 건물에 임시체류지를 만들면서 부산의 첫 난민보호소가 개소했다. 그해 5월 23일 보트피플 218명이 동중국 해상에서 대한민국 상선 쌍용호에 의해 구조돼 난민 수는 1573명으로 늘었다. 수용 난민 중 584명은 월남 참전 한국 장병 등 국내 연고자들을 찾아 정착했다. 한편 977명은 뉴질랜드 프랑스 등의 배려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떠나 60여 명만 남게 됐다.
1977년부터 보트피플이 100만 명 가까이 급증하자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유엔(UN)의 지원 약속하에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에 난민보호소를 운영했다. 지금은 대한민국 첨단주거단지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센텀시티 아파트촌 바로 맞은편에 1983㎡ 규모의 난민보호소를 건립했다. 조립식 건물 12채, 식당, 세면장 등 편의시설을 갖춘 난민보호소는 담장으로 둘러쳐져 이웃 주민과의 왕래가 자유롭지 않았다.
이곳에 수용된 베트남 난민들은 해외 무연고자가 대부분이어서, 격주로 수영 팔도시장에 쇼핑가는 것이 유일한 나들이일 만큼 폐쇄적인 생활을 했다. 198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에 이들 주민과 어린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야학교실을 운영하는 선배를 따라 몇 번 들어가 본 그곳의 이국적이면서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 후 16년간 운영되다가 1993년 2월 8일 잔류 난민 110명이 뉴질랜드로 떠나면서 완전히 문을 닫았다.
이처럼 우리는 난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유엔이 정한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다. 따라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다. 간단하게 보자면 다양한 이유로 자기 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서 나라 밖에 있는 자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그 삶이 고달프고 힘들겠는가?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 난민 신청자가 6600명에 이른다. 그러나 실제 난민으로 받아들여진 경우는 6%를 밑도는 400명 미만이다. 여러 가지 규정과 제도적 요건에 부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겠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인색한 수치다.
우리가 난민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은 단순히 인도주의적 관심 때문만은 아니다. 아픈 과거의 문제이자, 당장 현실의 문제이며, 조만간 닥칠 일이기 때문이다. 아픈 과거의 문제는 남북한 1000만 명이 넘는 실향민 문제다. 이제 80% 이상이 70세를 넘어 고령이 된 이들 실향민의 한은 20세기에 벌어진 우리 민족 최대의 정서적 응어리이다. 그동안 수차례 남북 상봉행사를 통해 겨우 1000명 정도가 부모 가족 친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들 실향민이야말로 우리 이웃에 있는 난민이다.
그다음은 현재도 이어지는 북한이탈난민들이다. 정확한 수치도 파악되지 않는 이들 난민은 21세기 우리 민족이 당면한 아픔 중의 하나다. 남과 북, 중국 당국 등이 서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까닭에, 그 심각한 현실에 비해 공론화되지도 못한다. 그렇다 보니 일부 종교적 사명감이 앞선 분들과 인도주의적 민간단체가 위험을 무릅쓰고 비공식적 구호활동에 힘쓰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전개될 통일 과정에 이들 북한이탈난민을 어떻게 할 것인지다. 어쩌면 그것이 통일의 수준과 질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독일이 통독 과정에서 발생한 20여만 명의 동독 난민에 대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사전 준비 덕분이었다. 유럽연합의 구조기금과 인근 국가와의 유기적인 협력 시스템을 바탕으로 수십 년간 시나리오 플랜으로 대비한 결과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장 통일 과정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발생할 수십만,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의 이탈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미국, 일본 등 이해관계와 협조가 필요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국제정세를 보면, 결국 고생하게 될 사람들은 힘없는 난민들일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지금의 위태위태한 동북아국가 간의 견제와 갈등 구조로는 비상시의 난민들을 협력적으로 수용 처리 포용할 제도적 외교적 수단은 보이지 않는다.
만에 하나 그러한 수단이 있다 하더라도 해당 국가 국민의 난민에 대한 수용적 태도와 정서가 문제다. 북한과 인접한 중국의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간간이 언론에 비친 탈북난민에 대한 중국인들의 태도를 보면 꽃거지, 브로커, 골치 아픈 존재, 성매매, 인권유린, 노동착취, 인신매매라는 키워드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수많은 인도주의적이고 인간적인 포용의 미담도 있으리라 믿는다. 하기야 다른 민족의 섭섭한 태도를 아쉬워할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 현재 거주하는 2만6000여 명, 부산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의 북한이탈주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터키 해변에 엎드려 있던 어린 난민 아일란이 어쩌면 미래 우리 이웃의 모습이지 말란 법이 있는가.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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