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챙긴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제자가 스승을, 후배가 선배를, 지역사회가 지역어른을 경우에 맞게 알뜰살뜰 챙긴다고 생각해 보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꽃이 피고, 도시공동체의 텃밭이 환해지지 않겠는가.
지난 5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국제문화센터에서 열린 '김승환 교수 정년퇴임 축하 모임'이 그런 자리였다. 2시간 가량 진행된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의 물결이 넘실거렸다. 지역을 보는 눈, 지식인의 책무, 어른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틔운 자리라고 할까. 그건 곧 지역의 희망 풀씨, 풀꽃 희망이었다.
'김승환이 누구지?'하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 인물검색을 넣으면 수십 명의 동명이인이 뜨고, 주목도가 높지 않은 자리에 그의 이름이 간신히 걸려 있다. 경력란에는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전 온천천네트워크 회장, 100만평문화공원조성협의회 사무처장 정도로 소개돼 있다. 그는 서울 태생으로 6·25전쟁 피란기에 잠시 부산을 머물렀고 일본 유학을 거쳐 1987년부터 부산사람이 됐다.
100만 평! 구호처럼 와닿는 100만 평은 김승환의 꿈이면서 브랜드였고 현재진행형의 시민운동 테마다. 낙동강 하구 외딴 둔치도에 '100만평 문화공원'을 만들자고 주장한 지 어언 15년, 지역사회는 이제야 그의 '말귀'를 알아듣는 분위기다. 2000년 초 그가 '100만평 문화공원'을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은 허황된 꿈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때부터 그의 초록심장은 박동을 시작했고 구체적 행동으로 표면화 됐다. 100만평문화공원조성협의회가 태동하고 '공원 1평 갖기운동'이 이어졌다. 2007년 회원들이 8억 원이란 거금을 모아 둔치도의 땅 1만3300여 평을 사들여 일부는 시에 기증하고 일부는 자연환경국민신탁에 맡겨 영구보존 조치한 일은 시민운동사에 남을 사건이다. 이때 김승환은 집을 담보로 2억 원을 뺐다고 한다. 당시 언론들은 '아름다운 알박기'라고 대서특필했다.
100만평 문화공원 조성 운동은 2011년부터 국가도시공원 추진 운동으로 진화했다. 올해는 어떻게든 국회에 올라가 있는 도시공원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서울 용산기지가 특별법에 의해 국가공원이 된 만큼,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부산을 비롯한 전국 15개 광역시·도에 국가도시공원을 하나씩 만들어달라는 게 요지다.
해운대 센텀시티의 '영화의전당' 앞 나루공원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과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05년 개장되기 전 이곳은 대부분 도로용지였다. 김승환이 대안을 들고 나섰다. "이건 최악의 그림이다. 도로를 지하로 넣고 그 위에 강변공원을 만들자." 건설비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던 부산시가 그의 합리적 대안을 수용해 설계를 바꿨다. 대안의 승리였다.
낙동강 하구의 보전과 비전을 찾는 작업에도 김승환의 세밀한 손길이 닿아 있다. 환경단체들과 함께 낙동강 하구 중장기 마스트플랜을 만들고, 낙동강 100경 선정 작업을 통해 당국의 개발중심 정책에 경종을 울렸다. 일을 해오면서도 그는 좀체 소리를 내지 않았다.
'김승환 교수 정년퇴임 축하 모임'은 한 지식인을 위해 지역의 시민환경단체들이 모처럼 의기투합해 꾸민 기획 행사였다. 행사를 앞두고 날아든 웹초대장의 모시는 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가진 것이 적어서 모여서 나누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마을 공동체가 현대 도시라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을 때 인간다운 도시,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부산을 만들고자 삶의 바친 당신을 기록하는 것은 '기억의 의무'다…'.
생명그물과 생태사회부산포럼 등은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김승환의 발자취를 좇는 영상물을 제작했다. 독립영상패 평상필름이 제작한 40분짜리 영상물은 TV 인물다큐를 방불케 했고, 전체 흐름은 1990년 이후 부산의 시민환경운동사였다. 행사 말미에 그가 나와 인사말을 했다. "시민운동을 처음부터 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필요에 의해 하다보니 시민운동이 되었다.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꿈을 갖고 작은 실천을 해온 것이 내가 해온 소박한 시민운동이었다. 그걸 기억해 준 후배들이 참으로 고맙다."
지역사회가 지역어른(스승)을 이처럼 공개적으로 챙긴 것은 부산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정파나 진영논리를 떠나 흔쾌히 박수를 쳐줄 부분이다. 지역에 원로가 없고 어른이 없다고들 한다. 따져보면 원로나 어른이 없는 게 아니라, 챙기지 않았던 거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거다. 학계와 시민단체가 서로 챙기고 밀어주고 당길 때 지역공동체라는 마차는 원활하게 굴러가게 된다. 이런 게 지역의 희망일 것이다.
체구가 작고 갈 데가 많아 경차를 타고 다닌다는 김승환. '초록심장을 가진 작은 거인'의 정년 이후 새로운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