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을 지은 허준의 일대기를 다룬 첫 TV드라마는 꼭 40년 전인 1975년 MBC '집념'이다. 당대 최고로 꼽히던 표재순 PD와 이은성 작가가 손잡고, 탤런트 김무생의 선 굵은 연기가 더해진 역작이었다. 동의보감의 허준에 대해 웬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이 드라마로 허준의 스승 유의태도 이목을 끌었다. 1999년 각종 드라마상을 휩쓸 정도로 화제작이 된 '허준'을 비롯, '동의보감'(1991년), '구암 허준'(2013년) 등 네 편의 드라마는 허준 못지 않게 유의태란 인물의 매력도 관전거리였다.
허준 드라마의 명장면들은 많이 있겠으나 유의태가 어의 양예수 집에서 벌이는 구침지희(九針之戱) 경연은 빼놓을 수 없다. 대침 아홉 개를 찔러넣어도 닭이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신비의 침술 대결이다. 길다란 침을 마지막 아홉 개까지 몸에 박고도 사람 손을 벗어난 닭이 날개를 펴고 퍼덕거리는 광경은 단연 압권이었다. 살아난 닭은 의술이 아니라 부정으로 어의 자리에 오른 양예수에 대한 유의태 식의 준엄한 꾸짖음이기도 해 깊은 여운을 남기기 충분했다.
화려한 궁궐 생활을 마다하고 벽지 산음현(山陰縣·경남 산청)에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인술을 펴던 유의태. 제자 허준의 지표였던 그의 삶은 작가 이은성이 있었기에 돋보일 수 있었다. 드라마 '허준' 열풍으로 덩달아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동의보감'은 이은성이 '집념' 종방 이후 주위 권유에 따라 소설로 다시 다듬어낸 것이다. 부산철도공착장 직원으로 있던 1967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애초 춘·하·추·동 네 권짜리 소설집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8년 1월 갑작스럽게 숨져 유고 소설집 형식의 상·중·하 세 권으로 1990년 간행됐다.
제자의 의술 향상을 위해 자신의 신체 해부를 맡긴 것으로 그려진 명의 유의태. 그에 대해 가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마진(홍역) 치료서인 '마진편'을 펴낸 유이태 선생을 기리는 유이태기념사업회와 후손들이 '가상의 인물'인 유의태 대신 유이태로 바로잡아 줄 것을 산청군에 요구한 것이다. 한약재의 본고장이자 유의태의 고향으로 알려진 군이 난처한 입장이다. 작품 속 유의태가 유이태인지는 작가만이 아는 일. 완전히 허구 인물인 성춘향과 홍길동도 '내고장' 홍보에 동원되는 판이다. '명의의 고장' 산청이 뒤늦게 홍역을 치르는 셈이다. 명의의 고장다운 비책이 나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