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남은 요지경 속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솥단지를 걸어 급식을 하고, 가정마다 때아닌 도시락 싸기 열풍도 불고 있다. 지난 1일부터 학교 무상급식 중단으로 빚어지는 씁쓸한 풍경이다. 경남도가 무상 급식 지원비를 끊어 급식 갈라파고스를 자임하면서다. 도지사 때문에 갑자기 돌변한 교육생태계로 난리가 아니다.
급식 파동이 오늘로 열흘째를 맞고 있다. 급식 갈라파고스 경남에 대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태평양 상의 외딴 섬 갈라파고스처럼 살아갈 것을 계속 고집할지 어떨지는 두고볼 일이다. 주위 불편한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뒷짐지던 경남지역 정치권이 뒤늦게 나서고 있으니 지켜볼 따름이다. 경남도의회가 재론에 나서고 경남 지역 국회의원들도 이런 기류에 슬그머니 올라타고 있다.
이번 파동의 당사자인 지역 주민들이 이를 일회성 사안으로 보는 건 금물이다.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했다. 어제의 일을 단순히 지난 일로 묻어버려선 안 된다. 오늘 시점에서 냉정히 되새길 때 같은 잘못은 피할 수 있는 법이다. 사회 발전은 이런 각성 없이는 한발짝도 내디딜수 없다. 이는 국가만 아니라 개인은 물론이고 단체 지역 사회에도 해당된다.
우리 헌법에 4대 의무가 있다. 국방 납세 교육 근로를 이른다. 국방 납세는 나라를 지키고 꾸려가기 위해 국민에게 부여된 짐이다. 교육과 근로는 쌍방향성을 지닌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일할 의무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를 보장할 책임 역시 국가가 진다. 배움과 일자리를 나라가 나서 장려할 때 지속적 국가발전이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정부든 일자리에 목을 매는 건 이런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일자리 창출이 정부의 시혜성 정책으로 볼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연히 해야 할 국가의 고유 의무사안이다. 이렇듯 의무교육도 차제에 다시 곰곰이 따져볼 문제다. 중학교까지 국민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나라가 이를 책임지고 가르치는 것이다. 초등학교까지 보장하다 2004년에 중학교까지 확대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집안 사정으로 진학의 길을 포기했던 어릴 적 친구들이 지금의 중장년들에게 한두 명씩 있을 터다. 또 초등학교 시절 월사금의 어두운 추억도 떠오를 것이다. 교탁 앞에서 돈 낼 날을 다짐받는 아이, 교실 한구석에서 무릎을 꿇거나 손을 든 아이 등 1960, 70년대 학교라기보다 빚독촉자리였던 풍경 말이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이란 게 빛 좋은 개살구였다. 내 아이가 구박덩어리가 돼도 나라 탓하지 않고 초등학교 졸업시키는 걸 나라에 대한 의무쯤으로 생각했던 우리 부모 세대들이었다.
당시 나라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부모들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형편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 지금 부모들에게 또 손을 불쑥 내미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점심값 내라는 것이지 교육과는 무관하다고 강변해선 안 된다. 의무교육이란 아무 부담 없이 꼭같이 공교육 받을 국민의 권리이자 국가로선 의무다. 중학교 고등학교 등 적용 범위에 차이가 있지만 의무교육을 한다며 급식비를 거두는 나라가 있는지 찾아볼 일이다. 이는 복지 문제로만 볼 게 아니다. 월사금 받던 시절로의 과거 회귀다.
이번 파동에서 지방자치제도 짚어볼 문제다. 올해로 지방자치제가 20년이 된다. 1995년 광역시·도 지사와 기초단체인 시장·군수·구청장을 내 손으로 뽑아 지역 살림을 맡겼다. 1961년 5·16쿠데타로 폐지된 풀뿌리 민주주의가 문민정부 시절인 김영삼 대통령 때 살아났다. 경남도가 도교육청 예산 집행 감사로 갈등을 빚다 급기야 올 도 급식지원비 257억 원을 끊어 이 사단이 났다. 일선 시·군도 서슬 퍼런 도지사 뒤에 섰다.
지방자치가 중앙정부가 미처 챙기지 못하는 주민 가려운 곳을 긁어주긴커녕 골칫거리만 만드는 꼴이다. 안 그래도 광역단체장이 '소왕국의 군주'처럼 군다고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터다. 광역 자치단체를 없앤 2단계 지방행정체계 개편을 수시로 거론하는 판에 경남도가 앞으로 좋은 핑곗거리가 될 게 뻔하다.
마지막으로 일당지배 정치구조다. 새누리당 일색의 지역 정치구조라 도도 시·군도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적 가치는 먼 나라 이야기다. 무상급식 시행이 갑자기 이렇게 중지된다는 게 서울시나 경기도였으면 가능했겠나. 단체장은 물론 광역의회도 기초의회도 한통속이다. 여야 의석분포가 13 대 9인 김해시의회 정도나 해당 조례 개정을 두고 논란이 벌어질 뿐이다. 내 새끼 밥그릇 뺏을 줄도 모르고 일편단심한 게 이렇다.
초·중학생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다. 밥그릇 문제로 깊은 상흔을 안긴 우리다. 의무교육, 지방자치, 일당지배에 대한 각성만이 우리가 갈 길이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누구 탓을 한들 달라지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