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는 바닥을 쳐야 그 해법이 나오는가? 그런 의미에서 도시의 낙후도가 전국에서 가장 심각한 부산에서 도시를 허물고 개발하기보다는, 다시 고쳐서 쓰자는 도시재생의 깃발을 치켜든 것은 당연지사겠다. 도시마다 도시재생 경쟁이 예사롭잖다. 아예 과열 수준이다. 서로 우리 도시가 낡았다고, 못산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문재(文才)가 뛰어난 어느 인문학자가 몇 년 전 인천의 산동네 박물관을 함께 둘러보고 오는 길에 '부산은 가난도 도둑맞은 듯하다'는 장탄식을 한 일이 생각난다. 그 당시 인천이 가난과 낙후의 상징인 산동네의 삶을 박물관이라는 형태로 보존, 활용하는 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이후 부산에서 산복도로 르네상스를 비롯한 다양한 도시재생 정책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이러한 도시재생 열풍은 양면이 있다. 한편으로 낙후와 쇠퇴를 숨기지 않고 정책의 장으로 끌어 올린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방향을 상실한 짝퉁 재생사업이 난무하는 것은 걱정이다. 아직 도시재생은 초기 단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끊임없이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제 도시재생 그 이후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이른바 포스트 도시재생을 고민해야 한다.

우선 도시재생 방식을 '창조적'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부산은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와는 다르게 '포용적(inclusive) 창조도시'라는 철학 위에 서민과 취약지역의 창조적 재생사업을 펼쳐왔다. 선진 도시들이 주로 창조적 엘리트 계층 중심의 '확산적'(diffusive) 창조 정책을 취했던 것과는 크게 대비된다. 이러한 명확한 철학과 방향이 있었기에 세계의 창조도시, 재생전문가들이 부산의 독특한 사례에 주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마추어적인 동네회관 짓는 식의 공간재생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특색 없는 공간재생사업의 결과는 곧 한계를 맞게 된다. 나아가 콘텐츠 부족과 운영비 문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재개발형 정비사업도 비슷비슷한 정비 내용과 주민갈등 등으로 10여 년 만에 한계에 부닥친 결과를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 영혼 없는 도시재생사업은 이전의 갈등 많은 도시정비사업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이 주도하려는 욕심을 자제해야 한다. 소지역단위 재생사업은 절차가 중요하다. 추진 과정의 '민주성'과 '예술성'이 관건이다. 이는 행정의 입장에서 보면 권한 나누기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민주화 과정이다. 그러니 인허가 업무 위주의 권위적 스타일은 안 어울린다. 공무원은 주민들과 밤늦도록 동네 평상에서 막걸리를 기울이는 스킨십이 필요하다. 사연 많은 노인과 눈높이를 맞추는 헌신 없이는 힘들다. 재생 관련 담당 공무원의 출퇴근지는 바로 현장이어야 한다. 재생사업은 민원해결사업이 아니라, 주민 상상력을 마을이라는 캔버스에 담는 예술적 사업이어야 한다. 주민, 행정, 전문활동가 등과 파트너십 방식의 타협과 협력의 문화적 축적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뚜렷한 방향과 철학이 결핍된 아류 재생사업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기 쉽다. 이전의 각종 개발형 정비사업이 수많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일부 조합 간부, 시행사, 대형 건설사들의 비리로 얼룩져 원주민을 울린 아픈 경험을 재생사업에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재생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업이 혹시 경직된 수단과 절차에 의해 실종되고 있지는 않은지, 의사결정의 독점과 전횡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피땀 어린 성과들이 딴 곳으로 새지는 않는지, 획기적 성찰이 절실한 때이다.

그러면 포스트 재생사업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키워야 한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초기에는 활동가 10명을 구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부산의 마을활동가 전문인력은 100여 명, 마을 리더 역할을 하는 활동인력은 5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말 출범한 각 구 단위의 마을재생협의회를 연계한 부산지역 마을공동체 민간협의체는 매우 의미 있는 조직적 성과다. 이처럼 도시재생 인력풀은 전국 어느 도시보다 많은 편이다. 앞으로는 도시공학이나 건축, 인문학을 공부한 더 많은 청년이 마을로 와야 한다. 몇 년 전부터 주장해 온 가칭 '도시재생사' 자격제도에 대해 미적거리던 중앙정부도 최근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도시재생은 주민뿐만 아니라 청년에게 새로운 인생의 출구가 될 수 있다. 마땅히 이들을 위한 경제적 지원책도 필요하다.

또한, 도시재생도 '통일 과정에 기여'라는 안목과 스케일을 넓힐 필요가 있다. 10여 년 전 통일 이후 동독을 가보니 낡은 도시의 재생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통일 이후 북한의 도시재생 수요는 이를 능가하는 엄청난 수준일 것으로 짐작된다. 소위 현실사회주의가 잘나가던 1960, 1970년대 지어진 공동주택들의 낙후도와 주민공동체 분위기는 짐작조차 힘이 든다. 따라서 통일 과정에서 지역 도시재생 인력이 북한의 도시재생사업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아마도 통일은 새벽에 도둑 넘어오듯이 오지 않을까?

끝으로 도시재생의 국제적 시야가 필요하다. 국제협력재단과 부산시, 대학, 활동가단체 등이 협력해 국제협력 프로그램(ODA)을 적극적으로 개발해보자. 이를 통해 제3 세계의 도시재생 및 마을만들기 프로그램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전파하고 축적하자. 그렇게만 된다면 도시재생에 관심 있는 전문인력의 국제적 경험 축적과 지역 청년의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우리 부산의 애환 어린 삶과 그 공간을 우리 스스로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랴. '논어'에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야,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는 법이다. 우리가 부끄럽다고 고개 돌린 사이 그 가난마저도 도둑맞을 뻔했다. 산동네 담벼락, 후미진 골목, 낡은 건조물, 남루한 시장, 바닷가 허름한 창고, 그곳은 여전히 부산의 보고(寶庫)다. 요절 시인 기형도의 표현처럼 '아직도 쿵쿵 타올라야 할 것이' 있거늘.

부산발전연구원 부산학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