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국제칼럼] '사도법관' 김홍섭을 생각한다 /송문석

뇌물·성추행 판사까지 사법 신뢰 상실의 시대

피고인마저도 사랑으로…법관 양심 필요한 오늘, 그의 낮은 자세 생각나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사막을 떠돌아 다니며 사는 유목민인 베두인들은 마을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용의자들을 불러놓고 '인두 재판'을 벌인다. 벌겋게 달궈진 인두를 핥게 해 혀가 타들어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 유죄이고, 무죄인 사람은 뜨거운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한단다. 재판은 '무브시'라는 판관이 주재하는데 사례비로 우리 돈 1만여 원을 받는다. 재판 방식이 무지몽매하기 그지없지만 시나이 반도와 수에즈 운하 지역에 널리 퍼져 있다고 한다.

무브시가 마녀재판과 다름없는 방식으로 겁을 줘 사욕을 챙기는 것은 최악의 재판관 모습이다. 법관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재판을 악용해 돈벌이에 나서고 도덕성을 잃을 때 해악은 크다. 변호사와 결탁한 판사, '명동 사채왕'으로부터 수억 원을 받은 판사, 독재와 고문을 찬양하는 등의 댓글을 수천 건 사이버공간에 올린 댓글판사, 성추행 판사, 막말판사 등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법률가들이 끊이지 않는 게 오늘날의 풍경이다. 대법원이 며칠 전 '법관윤리강령에 관한 권고의견 10호'를 냈다고 하지만 타인의 죄에는 추상같은 사법부가 제 식구의 허물은 감싸고 도는 모습을 봐 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어서 시늉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서양문화사 '새벽에서 황혼까지'를 쓴 자크 바전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세 가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그것은 '의사들의 장사꾼화' '기자들의 속물화' '법관들의 모리배화'란다.

김홍섭 판사(1915~1965). 법조계에서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검찰의 양심'으로 불린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과 함께 '법조 3성(聖)'으로 꼽히는 존경받는 인물이다. 요즘처럼 사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법관의 신뢰가 무너져내릴 때면 문득 생각나는 이름이다. 장면 박사가 예수의 12제자 같다고 해서 붙여준 '사도법관(使徒法官)'이란 별칭이 이름 앞에 따라붙는 사람. '법의(法衣) 속에 성의(聖衣)를 입은 판사' '사형수의 대부' 등도 탈속한 성자같은 천성과 인간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몸소 실천한 그의 일생을 대변하는 별명이다.

김 판사는 구도자적 자세로 재판에 임했으며 피고인을 인권보호를 뛰어넘어 사랑으로 대했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을까"라는 고뇌 속에서 법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것이라면 법관은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인간의 기본적 인권과 양심을 중시해야 한다고 했다.

1961년 광주고법원장으로 재직할 때다. 배를 납치해 북한으로 가기위해 난동을 부리고 살인까지 저지른 '경주호 납북미수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그는 피고인 3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묵념하는 자세로 5분 가량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재판장석에 앉아 있는 나와 피고인석에 서 있는 여러분들 중 어느 편이 죄인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불행히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하여 여러분을 죄인이라 단언하는 것이니 그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정은 숙연해졌고 재판장의 목메인 말에 피고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면서도 실정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형을 선고하기는 했지만 사형수를 종교적으로 구원하는 데 애를 쏟았다. 박봉을 쪼개 책을 선물하고 가족을 챙겼으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먼저 세상을 하직한 사형수 10여 명의 사진이 고인의 사진 밑에 나란히 놓여 저세상 길을 동반했다.

그의 삶은 청빈했다. 남대문시장에서 사다 물들인 군 작업복에 흰고무신을 신고 법원으로 출퇴근했다. 가끔 양복을 걸쳤지만 그마저도 장인인 낭산 김준연(전 법무장관)의 윗도리를 얻어다 몸에 맞게 줄인 것이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무짠지 한가지 반찬에 밥을 싼 도시락을 사무실에서 혼자 먹었다. 법관의 처우가 변변치 않은 시절이었다 하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조금은 덜 고생할 수 있는데도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처가에서 보내 준 쌀가마니조차 '수도생활'에 지장이 된다며 돌려보낸 사람이었다.

마침 올해가 김홍섭 선생의 탄생 100주년, 서거 50주년이다. 임상 경험이 깊어지는 의사가 차츰 진료와 투약에 겁을 먹는 데 비유해 법관으로서 법 적용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과녁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에 비유해 모두 백발백중할 수 없고 대신 얼마만큼 중심부에 접근하도록 던질 수 있느냐는 고뇌와 번민을 판사 생활 내내 했던 그다. 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횡포와 겁박, 무성의한 재판과 판결문, 법 장사꾼으로 전락한 일부 법관, 법조문만 달달 외워 방망이를 내리치면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은 손톱 만큼도 없는 냉혈한 법률가들이 상존하는 세상이다. 불의의 시대, '사도법관' 김홍섭 판사가 그립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2. 2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3. 36일 개막 BIFF도 ‘암살자(들)’ 후폭풍…레드카펫·무대 행사 줄취소
  4. 4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5. 5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6. 6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7. 7‘가덕도신공항 청신호’… 실무 맡았던 대우건설 이강석 대표이사 공식 취임
  8. 8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9. 9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10. 10신세계 센텀시티서 부산 대표 미식 브랜드 팝업
  1. 1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2. 2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3. 3[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4. 4[속보] ‘실탄 없이 경계 근무’ 사례 추가 확인, 국방부 기관 경고 방침
  5. 5국힘, 장외집회로 정부·여당 압박…민주 “張, 북치고 고함만”(종합)
  6. 6아시안게임 논란에 병역특례 도마 위…정치권 개편론 확산
  7. 7李 대통령 “무책임 극단주의 ‘무극파’ 경계" 언급.. 인선 반발 의식했나
  8. 8장동혁 “李 대통령, 대북 송금 이상의 뭔가 있나".. 北에는 분노조절 '잘해'
  9. 9野 유용원 “21사단 北 철책선 MDL 남쪽 지역 설치…MDL 침범 광범위”
  10. 10국민권익위, 울산 광역 및 기초의회 위반 사항 무더기 지적
  1. 1‘가덕도신공항 청신호’… 실무 맡았던 대우건설 이강석 대표이사 공식 취임
  2. 2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3. 3신세계 센텀시티서 부산 대표 미식 브랜드 팝업
  4. 451억 예상 임대수입 다시 계산하니 29억? 사업성 검증 논란
  5. 5부산의 혁신 기업들, 지역발전 동맹 결성
  6. 6CU ‘리센느 빵’ 보름만에 60만 개 판매
  7. 7‘직원용 시스템’ 등 빈틈 공격…現 보안체계론 AI해킹 무방비
  8. 8전남 시·군 절반 이상이 지난해 지역사랑상품권 국비 다 못 써.. '실수요 고려 필요'
  9. 9누리호 5차 발사 초읽기…6일 세운다
  10. 10해운대 노을 보면서 명상…파라다이스호텔 오션힐링
  1. 1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2. 2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3. 3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4. 4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5. 5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6. 6AI로 지인 성착취물 제작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 잡고 보니 현직 경찰관(종합)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5일
  8. 8기장 병산저수지 때 아닌 녹조…악취 진동
  9. 9[한 손 뉴스] 1400년 역사 동래온천지구…전국 네 번째 온천도시 지정
  10. 10책임 더 커진 경찰, 해킹 내사…‘사이버 1호 사건’ 가능성
  1. 1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2. 2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3. 3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4. 4“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5. 5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6. 6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7. 7‘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8. 8[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9. 9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10. 10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자동화의 세상에서 지능화의 세계로
국제칼럼 [전체보기]
배지의 실력행사
개헌 말하려면 헌법 준수부터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상표권 알박기
민원인(들)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공사비, 법 개정 앞서 정부가 힘 실어야
AI 해킹에 노출된 금융권 보안체계 재점검 시급하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드골 대통령과 군복
청년기본법, 청년친화도시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무(武)
의료 전문성이 병원 밖 나가는 길 열어야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