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대표 공예품 나전칠기는 전복 껍데기가 있었기에 명성을 더할 수 있었다. 당나라에서 들어온 조개 껍데기 제작기법에서 무지개 빛을 내는 전복 껍데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오색찬란한 색깔을 뽐내는 우리식 나전칠기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웃 나라들과 주요 교역물품으로 등극했던 나전칠기 제품은 조선시대 후기에 가구장식에 널리 애용되면서 안방 가구 문화를 바꿔놓았다. 십장생(十長生), 산수풍경 등이 화려하게 새겨진 장롱은 주거 양식이 변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안주인들이 마른 수건으로 매일 닦아 윤기를 내던 애중품 1호였다.
의약품 대용으로도 전복 껍데기는 요긴하게 쓰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병의원 이용이 어려웠던 시골 할머니들이 눈이 침침하면 이를 삶은 물을 마시곤 했다. 눈질환 치료제였다. 의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었다. 조선시대 황도연의 의약서 방약합편(方藥合編)에 '전복살은 맛이 짜고 성질은 서늘한데 눈을 잘 밝게 하고 껍데기는 눈에 백태가 끼는 것을 제거한다'고 적혀 있다. 명나라 목희옹의 신농본초경소(神農本草經疏)에도 '혈에 들어가 열을 제거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기술할 정도. 민간요법으로 외상 출혈이나 동상 치료에도 전복 껍데기 가루를 사용했다.
매끈한 표면과 무지개 빛을 내는 전복 껍데기는 과학적 신비도 품고 있다. 90%의 탄산칼슘에 단백질 등으로 구성된 것이 비밀의 요체. 층층이 쌓여 있는 탄산칼슘 사이에 고무성분인 단백질 분자가 끼여 있어 원래의 탄산칼슘보다 1000배 가량 단단하다고 한다. 전복만의 오색찬란한 빛깔도, 어느 물체보다 윤기나는 표면도 모두 이 구조 덕분이라고. 미국의 한 대학 연구팀은 전복 껍데기의 칼슘 성분과 천연고분자로 불리는 고무성질의 분자 배열을 응용해 세라믹보다 약 두 배 더 강한 탱크용 철갑을 만들기도 했다.
전복 껍데기가 또 한 번 진화해 우리 곁에 다가온다. 주성분인 탄산칼슘에서 고순도 산화칼슘을 추출 합성해 치과의료용 합성골 이식재 원료인 생체이식용 바이오 세라믹의 상용화 기술이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해양수산부와 해양과학기술진흥원이 조선대 산학협력단에 연구개발자금을 지원해 일궈낸 성과물이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임플란트 재료 대체용이 우리 손에서 이뤄진 것이다. 사라진 나전칠기 명성을 이 한국형 생체이식용 세라믹이 이어간다면 더없이 반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