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들어온다!" "줄 잡아라!"
나루터가 시끌벅적하다. 백사장 저쪽에는 이른 아침부터 선창시장이 섰다. 주막촌 주변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보부상들이 좌판을 펼쳤다. 그릇장수, 옹기장수, 비단장수, 젓갈장수, 소금장수, 짚신장수…. 잡화와 패물을 파는 방물장수도 보인다. 누런 포를 높이 세운 황포돛배가 나타났다. 낙동강 하구에서 올라온 소금배다. 곡물 수백 석을 실은 대형 초마선(哨馬船)이 선창으로 다가선다. 관원들과 팔뚝 굵은 장정들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초마선은 영남 각지에서 모인 곡물을 운반하는 세곡선이다. 해 떨어지기 전에 문경새재를 넘어 남한강 물길에 올려야 한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파발마가 달려오고, 걸망을 멘 선비들이 새재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강 건너편 언덕에 세워진 관수루(觀水樓)가 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지켜본다.
조선 후기 어느 한때의 낙동나루 가상 스케치다. 낙동나루는 경북 상주시 낙동면과 의성군 단밀면을 잇는 나루다. 부산의 구포, 합천의 율지와 함께 조선시대 낙동강 3대 나루로 꼽혔던 곳이다. 구포에서 상주까지의 물길이 700리. '낙동강 칠백 리'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
낙동강 뱃길이 '거짓말처럼' 복원되고 있다. 지난주 부산시가 주관하고 김해, 양산시가 참여하는 '낙동강 뱃길 복원 관광자원화 사업'이 정부의 지역행복생활권 선도사업으로 선정됐다. 2017년까지 추진되며 총사업비가 43억 원이다. 이 중 30억 원은 국비다. 정부에서 신경을 쓴다는 의미다. 앞서 부산시와 경남도는 상생사업으로 지난해 8월부터 하굿둑~물금을 오가는 낙동강 생태탐방선을 운행하고 있다.
정부 지원 속에 부산권에선 삼락·화명 생태공원에 각각 선착장이 만들어졌고, 경남권엔 양산 물금나루와 창원 본포나루, 대구권에는 화원 사문진나루, 경북권에선 구미 비산나루와 상주 회상나루, 예천 삼강나루, 안동 개목나루에 선착장과 수상레저시설 등이 들어서고 있다.
아직은 점과 면에 불과하지만, 선으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다. 낙동강 뱃길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나루터 문화를 되살려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 같아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불편한 진실이 감춰져 있다. 토건을 앞세운 대운하의 '악몽' 때문이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아직도 대운하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한 것 같다. 최근 출간된 그의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을 보면, 4대강 사업과 대운하에 대한 아쉬움이 행간 곳곳에 묻어난다. 여론에 밀려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둔갑시켰지만, 강을 보며 손가락은 대운하를 가리킨 꼴이다.
그렇듯, 대운하는 '흘러간 물'이 아니다. 감사원이 확인했듯이 4대강 사업의 원형이 대운하이고, 그 잔영을 드리운 채 사업이 진행됐다. 낙동강의 8개 보가 그렇고, 준설을 통해 확보한 수심(4~6m)이 그렇다. 과다하게 가둔 강물은 어디에 쓸 텐가. 누구도 명쾌하게 이를 설명하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운하로 갈 수 있는 인프라가 깔렸다는 사실이다. 수심이 확보돼 있어 보에 갑문을 내면 뱃길이 트인다. 정부 사이드에선 "저 인프라를 어떻게 하겠느냐. 포스트 4대강이 갈 곳은 대운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이 솔솔 나오고 있다. 토건적 시각이라 눙치고 넘어갈 이야기가 아니다.
낙동강 뱃길과 대운하는 도긴개긴이다. 윷놀이에서 한 칸이나 두 칸이나 별 차이가 없듯이, 뱃길이 칸을 넓히면 대운하가 되는 것이다. MB가 여기까지 내다봤다?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뱃길 복원 사업을 불편하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지자체들이 벌이는 뱃길 복원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속 좁은 처사다. 낙동강 뱃길 복원은 그 자체로 역사적이다! 일제 강점 이후 약 100년 만의 뱃길 부활이요, 낙동 대수로의 귀환이다. 뱃길 복원은 그 자체로 평가하면서 그 너머, 더 큰 것을 봐야 한다. '낙동강 칠백 리'에 흐르는 것이 어디 물만이더냐. 이곳에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고, 경제가 용솟음치며 생태와 미래가 흐른다. 오늘날 1300만 영남권 주민의 식수원이란 사실은 절대적 존재 가치를 부여한다. 이 모든 것을 함께 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수운시대가 그립다고 대운하를 끌어올 순 없다. 대운하의 기능을 찾기엔 우리가 너무 멀리 와 있다. MB의 '운하병' 때문에 잘못 태어난 경인 아라뱃길이 반면교사다. 2조2500억 원을 들였지만 지난해 유람선 이용자는 5만 명으로 목표의 8%에 그쳤고, 화물 실적은 더 초라하다. 무모한 정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고 있다.
지금은 낙동강 공동체와 본연의 흐름을 성찰하는 자세로 바라볼 때다. 물은 부드럽고 유연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지 않던가. 만인이 먹고 만물이 이용하는 강물로 장난치면 안 된다. 천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