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방자치 혁신 원년'의 해다. 행정자치부가 야심차게 내건 구호다. 이를 위해 현장 중심 지방자치, 공동체 활성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한다. 뭔가 올해부터는 지방자치가 달라지겠지 하는 섣부른 기대는 접는 게 좋겠다. 현장 중심 지방자치의 핵심인 기초자치제를 없애려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의 '지방자치 발전 종합계획'에 담긴 내용이다. 국무회의를 거친 이 계획에는 기초자치단체가 없다. 서울시와 부산 대구 등 6대 광역시를 대상으로 한다. 이들 대도시는 동일생활권이라 굳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디데이는 2018년 다음 지방선거부터다. 같은 정부 아래 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하다가도 '지방자치 혁신 원년' 표현에 깊은 뜻이 담겨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개발독재시대 중앙집권적 행정이 그리운 거다. 서울만 해도 10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다. 부산은 350만 명, 인천은 290만 명, 대구는 2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런 거대 도시에 시청 단위 행정만 있으면 만사형통이고 일선 구청은 행정낭비만 초래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일까. 관선 구청장 시대로 회귀하겠다는 말이다. 24년간의 지방자치제 역사의 부정이다.
가령 부산이 같은 생활권이란 말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해운대구와 중구, 강서구의 생활여건은 판이하다. 기장군과 영도구 사정은 또 어떻나. 다른 광역시라고 다르지 않을 터다. 주민들이 바라는 건 지역 맞춤형 행정서비스다. 기초자치제를 더욱 활성화하는 게 맞지 과거 권위주시대 박제물인 관선 구청장제를 들고 나와선 안 된다.
기초자치제를 없애겠다는 것은 1960년대로 되돌아가자는 거다. 주민 자치역량에 대한 불신에 다름 아니다. 지방자치위가 1970, 80년대를 관통하며 치른 우리 국민들의 민주 시민정신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기초자치제가 100% 주민 만족을 시켜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판을 갈아엎을 게 아니라 거름을 주고 가꾸려는 애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대에 못 미친다고 없앨 거라면 남아나는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제헌 의회부터 있어온 국회인들 멀쩡할까.
우리 헌정사에서 지방자치제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우리 사회 민주화의 또 다른 척도다. 독재시절에는 지방자치제가 질식하던 시대다. 4·19혁명으로 들어선 민주당 정권에서 사실상 첫 지방자치시대를 열었다. 1960년 12월 지방선거로 시장 읍장 면장은 물론 지방의원도 주민이 직접 뽑았다. 하지만 박정희 군사정부는 1962년 헌법을 개정해 자치제를 없앴고 1972년 유신헌법에선 통일이 될 때까지 시행을 미뤘다. 신군부의 5공헌법은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언급하며 먼 훗날을 기약했다.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만든 '87헌법'에 따라 50년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된 역사적 산물이다.
민주발전과 궤를 함께해온 자치제다. 이쯤되면 지방자치발전위라는 이름이 무색해진다. 위원회에 몸담은 이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치를 모르지는 않을 터다. 지방자치발전위가 정부가 의도하는 결과물에 맞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1960~1980년대 자치제 없이도 잘 지냈으니 그 시대로 돌아가자는 반동풍에 진배없다. 모든 제도가 전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듯 일부에서 이런 시선이 있을 수 있다. 하나 이는 당시 이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뒤늦게 갖는 불편함이지 교과서적 가치가 전부 부정될 정도는 아니다.
군사정부가 '과잉민주주의'라며 폄훼했던 지방자치제가 5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주장에 동조할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상도 상전벽해같이 달라졌다. 농어촌 사회가 중심이던 당시와 달리 대도시중심 사회다. 서울과 부산 등 6대 광역시 인구만도 2320만여 명에 이른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다. 대도시 기초자치는 폐지하고 도 단위 기초단체만을 존속시키겠다는 것에서 또 다른 꼼수를 본다.
우리 사회의 영원한 슈퍼갑인 국회의원의 기득권 챙기기다. 광역시 구청장들은 국회의원에겐 버거운 상대다. 지방선거 때야 공천권으로 요리를 할 수 있지만 당선되면 어느새 주민 눈높이에선 동급으로 보인다. 이는 인구가 적은 도단위 자치단체와 너무나 다른 사정이다. 최근 각 정당들이 앞다퉈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고 있는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현역 의원들로선 예비 경쟁자를 만들지 않는 구조다.
지방자치제로 성년을 맞은 대도시 주민들에게 다른 정치인은 보지 말라는 소리다. 1960, 70년대 이맘때 집집마다 국회의원 얼굴이 실린 한 장짜리 일 년 치 달력이 나돌던 때가 생각난다. 지방자치발전위가 대통령 직속이니 대통령 생각이지 싶다. 여기서도 시대를 거스르는 민심 역행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