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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1세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김갑수

구시대 숭배 분위기, 박근혜정부가 선도…새마을운동·유신이 대선 공약이었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1-03 19:33:2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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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 가운데 특히 불가항력적인 것이 시간 즉, 나이며 세월의 흐름이다. 원하는 시간대를 선택해서 산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꿈꾸는 것은 가능하다. 어떤 이는 젊어 한창때의 체력이며 몸매를 유지하느라 갖은 노력을 다하고 또 어떤 이는 흘러간 전성기 시절의 영광을 반복해 말한다. 그 같은 과거회귀형 꿈꾸기가 실상은 일종의 퇴행증상에 불과할 것이리라.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떤 결단을 내린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현재를 살아가야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현재에 소속되지 않기로. 나는 10여 년째 경험하고 있는 이 21세기가 도무지 달갑지 않아서 주어진 남은 생애를 20세기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140개 쪽글자로 속내를 드러내는 트위터 글의 파편성이 싫고, 먹고 있는 음식이며 만나는 사람 따위를 실시간 공중에게 전파하는 페이스북의 유행이 끔찍하다. 절대로 SNS를 하지 않으리라. 온갖 전문분야의 권위와 가치가 이제는 경제적 능력 하나로 수렴되는 천박성이 싫다. 기초적인 생계유지 외에는 절대로 부의 성채에 관심과 동경을 갖지 않으리라. 어떤 진지한 담론과 사색도 대중적 관심과 인기를 끌지 않으면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받는 대중권력의 과잉도 또한 싫다. 대중을 향해 말과 글을 팔아먹고 살지만 절대로 대중의 기호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리라.

'절대로'를 반복하는 이유는 그 결심, 20세기적 생존이 쉽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시대에 뒤처진 낡은 사람 취급을 받는 순간 그의 사회적 수명은 끝장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20세기를 지향하는 것일까. 새로운 밀레니엄이 도래한다고 떠들썩했을 때 뉴스위크지가 20세기를 정의한 바 있다. '저항의 세기'였다고. 그 20세기에 무산자의 저항으로 사회주의 국가실험이 있었고, 제1세계를 향한 제3세계의 거대한 저항이 있었다. 남성지배 사회에 대한 여성의 저항이 있었고, 인권·반전·생태주의적 저항이 있었다. 모든 저항은 사회적 약자가 특권적 지배세력을 겨냥하는 방향성이 있었다. 모험과 투쟁과 희생이 저항의 풀무이자 원천이었다. 나는 저항의 세기라는 규정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지나간 20세기는 이상주의의 세기였다고.

요즘 우리 사회에도 20세기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전혀 뜻밖으로 다르다. 박정희, 전두환 같은 군사통치자를 숭배하고 특권적 성장을 했던 재벌집단을 찬양하고 심지어 일제시대까지 예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20세기에 피나는 저항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대상인 앙시앵레짐(구체제)으로의 회귀현상이다. '국부' 이승만 가부장 국가에서 '총통제' 유신시대까지 횡행했던 냉전적 구호들이 난폭하게 쏟아져 나온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선도하는 주체는 신386, 유신 올드보이들의 귀환으로 상징되는 박근혜 정부다.

국가기관의 부당한 선거개입 때문에 '댓통령'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정통성을 부인할 수 없는 정상적인 정권이다. 그런데 유권자들은 새마을운동이며 유신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재현하라고 표를 준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 가치와 정반대되는 창조경제였고, 입법·사법·행정부 권한을 대통령 한 사람이 거머쥐는 유신통치와 전혀 상반되는 국민행복시대를 제안했다. 고도성장기의 재벌 특혜 대신 경제민주화를 약속했고, 부의 편중을 제어하는 복지확대를 내세웠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 대결주의 대신 전향적 남북관계를 시사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또한 외쳤다. 공약 어느 대목에 1970년대 지향이 있었던가.

민주화 운동이 시대에 뒤처진 낡은 유산이라고 주장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묻고 싶다. 독재시대 예찬은 더 오래고 낡은 유산이 아닌가. '아버지 대통령 각하'와 '어버이 수령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먹고살게 해줬다고 그 '각하'를 찬양하는 목청 속에 참담한 저임금 구조를 감내했던 당시 노동자들의 희생과 노고가 담겨 있기나 한 걸까. 그러고 보니 20세기로 살겠다고 새삼 결심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두 개의 상반된 20세기 동경이 마주 서 있는 형국이니까. 박근혜 정부 8개월을 통해 깨닫는다. 이 땅에 21세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시인,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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