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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위의 나날을 원치 않는다 /김갑수

박근혜정부·국정원, 노무현 '부관참시'…국민지지 원한다면 상식적 조치 취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7-01 20:13:2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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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6월 28일) 지인을 꼬드겨 서해 대부도를 다녀왔다. 바다 저 멀리 낙조의 장관을 보고 싶다는, 그 유혹의 말은 핑계였다. 그날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성토하는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래 최대 규모의 집중 집회로 사방에 공지문이 떠있는 참이었다. 집회에 대한 관심을 떨치기 위해 바다를 찾았다. 망망대해 앞 갯벌은 햇살만 뜨거웠다.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전국적 시위가 떠올랐다. 대운하가 4대강 공사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무슨 소득이 있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기 플랜에 비추어 그때 대규모 시민저항이 없었다면 최소한 원치 않는 의료 민영화가 전면 실시됐을 공산이 크다. 의료분야뿐인가. 국가를 동원한 시장주의자들의 이권추구 촉수가 어디까지 뻗쳤을지 모를 일이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는 아직도 거리의 함성을 부르는 후진국형이다.

집권에 성공한 세력이 바보일 리 없다고 믿는다. 더욱이 선거 때 박근혜 후보 핵심 슬로건이 국민 대통합이었다.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처럼 국민 대다수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정부를 꾸려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48%의 야권 지지자를 적으로 돌리는 부관참시라니! 국정원의 명예를 위한답시고 국가 정보체계의 근간을 흔들다니! 그런 행태를 청와대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뺌하다니!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초장에 박살내 버리다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 노선은 분쟁지역을 평화지대로 전환하려 한 것이고, 국정원은 특정 정파의 도구가 아니라 안보를 위한 국가기관이어야 하고,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북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믿는 국민들에게 새 정부는 비수를 들이댄 셈이다. 대체 어쩌려는 속셈일까.

기업이든 공적 기관이든 큰 규모의 조직체험을 해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의외로 한국의 조직집단은 과학적 사태분석이나 정밀한 장기계획 따위가 먹히지 않고 실력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숱한 연구와 검토를 거친 보고 자료들이 결재권자의 직관으로 한방에 휴짓조각이 되어 버린단다. 그러니 리더의 멘털이 가장 중요한 결정변수라는 말이 나온다. 혹시 지금 벌어지는 사태를 지배하는 핵심요인이 이른바 멘털의 문제인 것은 아닐까.

지난 대선 때의 기억이다. 후보 간 TV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가 4대 민생현안을 언급하면서 느닷없이 '불량식품'을 거론했다. 다들 '웬 1970년대?' 하면서 의아해했던 발언이다. 보수신문 정치기사에 즐비한 독자 댓글들을 보라. '월남패망을 기억하자' '좌경용공세력을 토벌하자' '정의사회 구현하자' 등등 기억 속에 아스라한 관제구호가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지금 서울 도심가에는 '북괴의 적화야욕을 분쇄하자'는 플래카드가 도처에 걸려있다. 혹시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지지자들을 지배하는 이른바 '멘털'이 1970, 80년대 시점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적대세력을 향해서 '미친 개는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는 구호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성장기에 고착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심리학적 정설이 떠오른다.

시위현장을 피해 바다로 향했었다. 현실도피를 한 것이 아니다. 포효하는 큰 목소리 대신 지혜로운 침묵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 이권추구 정권을 힘겹게 벗어나니 냉전의식에 멈춘 퇴행정권을 맞이한 것인가. 어느 일방이 말살되어야 끝나는 냉전적 대결주의자 앞에서는 어떠한 토론도 합리적 대화도 불가능해진다. 강압하는 지배권력과 성난 군중의 난폭한 시위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같은 시절이 다시 도래하기를 누가 원하고 있는가. 아직은 집권 초기다. 집권세력이 바보일리도, 압도적 국민지지를 원하지 않을리도 없다. 이전 정권 하에서 자행된 국정원 선거개입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에 철저히 중립적 자세를 취하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 비상식적인 정상 간 대화록 공개를 사과하고 국정원장을 경질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 등 선거 시기의 공약사항을 서둘러 집행하고 장기불황에 따른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모두가 상식선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다. 또다시 시위의 나날을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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