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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남북 관계, 고르디우스의 매듭 /강동수

'통일의 알박기'라던 개성공단의 좌초

강경론 유혹을 피해 평화의 안전핀을 다시 채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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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께 기자는 정부 주관 방문단의 일원으로 개성공단을 둘러본 적이 있다. 퇴락한 개성시내를 통과하자 최신식 공장지대가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북한 근로자들의 작업을 지켜보았을 때는 "개성공단은 평화와 번영의 블루오션"이라던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자신 넘친 언명이 실감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자남산 여관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평양의 '경제 일꾼'이 현대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장군님'께서 금강산 사업에 온갖 특혜를 내려 보살피는 데도 투자를 미적거리고만 있다는 거였다. 당시 우리네 인식은 그 사업으로 북이 얻을 게 훨씬 많다는 것이었던 터라 당혹스러웠다. 표정을 유심히 살피니 그는 정말로 '현대에 대한 장군님의 은혜론'을 굳게 믿는 것 같았다. 기자의 심중에 문득 불안이 스쳤다. 아, 양쪽의 인식이 이렇게 다르니 남북 교류 협력이 순탄치만은 않겠구나 하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승용차 지붕에 제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철수하자 박근혜 대통령은 "전 세계인들이 지켜봤다. 합의가 일순간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북한에 투자하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런데 기자는 8년 전 평양 경제일꾼의 발언이 떠오르던 것이었다. 우리가 "개성공단은 너희의 달러박스 아니냐. 어떻게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느냐"고 분개할 때 북한은 "군사기지까지 뒤로 물려가며 땅 내주고 저임금 인력을 제공했는데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압박할 수 있느냐"고 생각한다는 거다.

북한을 두둔하려는 게 아니다. 개성공단 폐쇄의 뿌리는 북한의 핵 도발에 있는 건 분명하다. 문을 먼저 걸어잠근 쪽도 북이다. 다만 남북의 동상이몽은 이번에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게 파국의 근본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는 이야기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지난달 3일 "북한이 개성공단 인원을 억류하면 군사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의 귀환을 막지도 않았는데 '인질 사태'를 가정해 엔테베 작전 비슷한 걸 하겠다고 공개 언명한 게 과연 신중한 처사였을까. 인력 철수를 놓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대통령이 시원한 결단을 내렸다, 이참에 명치에 걸린 알심 같은 개성공단을 아예 폐쇄하자는 주장이 있다. 반면 북한이 명시적으로 폐쇄를 거론하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먼저 전원 철수한 건 성급하지 않았느냐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남북 평화 무드란 것은 언제 깨질지 모를 유리잔과 같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평화와 통일의 알박기'라던 개성공단은 빠져 달아난 수류탄의 안전핀처럼 무력해 보인다. 문제는 남북 양쪽이 빼들 수 있는 카드가 소진돼 버린 거다. 그럼 일촉즉발의 대치뿐이다. 정부에게 묻겠다. 북이 계속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우리의 다음 조치는 무언가. 천안함·연평도 사건 같은 도발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가. 도발이 일어나면 실제로 응징할 자신이 있는가. 그 이후의 수습책은 또 무언가.

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부 보수층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의 '대북 퍼주기'가 핵 개발에 돈을 댄 결과가 됐다고 맹렬히 비난한다. 그렇다면 대북 교류를 꽁꽁 막았던 이명박 정권 때는 어땠나. 더 빠른 속도로 핵을 개발하지 않았던가. 이명박 정권 때 개성공단을 통해 북에 들어간 돈이 훨씬 많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박근혜정부는 북한의 핵 개발을 막을 묘책을 과연 갖고 있단 말인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란 게 있다. 매듭을 푸는 이가 아시아를 지배할 것이란 신탁이 있었지만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 아무도 풀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알렉산더가 매듭을 풀었다. 아니, 칼로 내리쳐 끊어버린 거다. 하지만 남북관계란 매듭은 훨씬 복잡하다.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미·중·일·러 등 열강의 이해관계, 경제적 손익, 국내 정치 역학…. 이 복잡한 변수가 얽힌 매듭을 단칼에 자를 순 없다.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정부는 대안 없이 행동해선 안 된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더디고 힘들며 홧증이 치솟더라도 매듭을 하나하나 손으로, 대화로 풀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알렉산더의 칼을 내려놓을 때다. 개성공단이란 안전핀을 다시 채울 때다. 그것은 굴복이 아니다. 책임 있는 평화 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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