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도킨스가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두어 놓고 이 책을 준 다음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좀 오버하며) 격하게 외친 책이 있다. 정치학자 액설로드가 쓴 '협력의 진화'이다. 이 책의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의 컴퓨터 프로그램 대회를 수차례 열었더니 가장 단순한 팃포탯이라는 프로그램이 계속 우승했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두 경기자가 배반과 협력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둘 다 협력을 선택했을 때 각각 3점을 받고, 한쪽은 협력하고 한쪽은 배반했을 때 협력한 자는 0점, 배반한 자는 5점을 받는다. 둘 다 배반했을 때 각각 1점을 획득하게 된다. 내가 협력을 선택하면 3점 아니면 0점을 받게 된다. 반면 배반을 선택하면 5점 아니면 1점을 얻게 된다. 모든 경우를 고려해 본다면 상대방의 선택에 관계없이 배반을 하는 게 항상 이득이 됨을 알 수 있다.
액설로드는 전 세계의 게임이론 전문가들에 의해 이 게임에서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도록 각자의 전략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14개를 가지고 라운드로빈 방식으로 5차례 반복하여 대결시켰다. 그 결과 팃포탯이 우승하였는데, 팃포탯은 협력을 우선하며 상대방보다 먼저 배반하지 않도록 짜여진 프로그램이었다. 배반이 이득이 될 수 있는 게임의 구조 속에서 협력 프로그램이 결국 가장 높은 득점을 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팃포탯은 1차 대회 결과를 반영하여 보다 복잡하게 업그레이드된 2차 대회(63개 프로그램이 참여)에서도 당당히 우승한다.
팃포탯은 모든 프로그램과의 대전에서 단 한 차례도 상대방보다 좋은 점수를 얻은 적이 없었지만 놀랍게도 최종적으로는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다시 말해 팃포탯은 늘 졌지만, 그래서 이겼다.
그것은 배반의 악순환(둘 다 배반일 때는 모두 1점임을 상기할 것)에 빠지기 쉬운 다른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항상 상대방의 협력(둘 다 협력일 때는 모두 3점임)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팃포탯은 이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겼다. 팃포탯은 상대를 밟고 가기보다는 '함께' 가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멀리 갔다.
액설로드는 이러한 협력의 호혜주의가 실제 사회와 정치 그리고 생명계의 진화에도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역설한다. 이러한 액설로드의 주장은 문득 잊혀 진 한 사상가를 환기시킨다. 19세기 말 '상호부조론'을 주장했던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 그는 당시 유럽을 풍미했던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에 반대하며, "사회성(상호부조) 역시 상호투쟁과 마찬가지로 자연법칙이다"고 외쳤다. 그는 상호부조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이야말로 진정한 적자라고 생각했다. "경쟁하지 말라! 경쟁은 항상 그 종에 치명적이다." 꿈속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살아남는 이 땅에서 이 무슨 순진한 외침인가?
팃포탯의 역설은 옛 동양의 은자인 노자(老子)를 또한 이곳으로 호출하게 한다. 은자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성인은 자신을 뒤로하기에 자신이 앞서게 되고, 자신을 내던지기에 자신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게 된다(聖人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도덕경 7장) '자신을 뒤로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투지 않음(不爭)', 즉 이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크로포트킨의 '경쟁하지 말라'는 말과 아주 닮았다.
나는 진작부터 노자에게, 당신 말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그런데 팃포탯이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말이 순진한 촌놈의 잠꼬대가 아니라 매우 수학적이고 자연적인 법칙이 될 수 있음을 말이다. '컴퓨터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철저히 이기적인 프로그램들의 게임이며 팃포탯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런 이기적 개체들 속에서 협력이 창발되며, 이 협력이 생존과 진화의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숨 막히는 무한 경쟁의 시대, 아니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이 팃포탯의 교훈과 노자의 촌스러운 지혜의 말씀을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협력하는 자가 적자(適者)가 된다. 이기려하지 않는 자가 이긴다. 결국에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