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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삼성, 떡값 그리고 노회찬 /강동수

뇌물 주고받은 죄와 그걸 까발린 죄 어느 것이 더 클까

"까불면 다친다"가 통하는 두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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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딸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이동통신 대리점에 갔다가 기자까지 덩달아 새 휴대전화를 장만했다. 좋은 조건으로 주겠다는 주인의 꼬드김에 넘어갔던 거다. 멀쩡한 전화를 바꿔 찜찜했지만 온갖 최신 기능이 장착된 새 전화에 마음이 빼앗겼다. 아이의 훈수를 받아 이런저런 기능을 실행하며 감탄을 거듭하다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 휴대전화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잡아먹었을까 하는.

휴대전화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시계를 잘 차고 다니지 않는다. 고화질에 캠코더 기능을 갖춘 카메라가 내장돼 있으니 굳이 사진기를 살 필요도 없다. 뮤직 플레이어 기능이 있으니 녹음기도 사라졌고 음반도 잘 사지 않는다. 전자도서 기능 때문에 책도 마찬가지. 휴대전화에 새 기능이 하나 생길 때마다 관련 산업들이 우수수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시계회사가 무너지고 사진점이 사라지고 음반·출판시장이 위축되고…. 국부의 1/5에 가까운 20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전자의 고용 기여도는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들고 있는 최신형 휴대전화가 고용시장을 빨아먹는 블랙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소름이 끼쳐졌다.

IT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은 수공업자들이 기계 파괴에 나선 19세기 초의 러다이트 운동을 되풀이하자는 것도 물론 아니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에서 휴대전화에 코를 박은 젊은이들이 그 휴대전화 때문에 제 일자리가 줄어드는 자본주의적 약육강식 구조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궁금해진 것도 사실이다.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삼성은 휴대전화를 팔아 모은 막강한 자본력을 무기 삼아 한국사회의 성역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지분을 불법으로 상속해도 시늉만의 처벌에 그쳤다. 떡값을 정·관계와 검찰에 뿌려 공직사회를 오염시키고도 멀쩡하다.

잠깐 떠올랐다가 잠복했던 이런 단상이 다시 의식의 표면으로 부상한 것은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때문이었다. 그는 2005년 8월 옛 안기부가 불법 도청한 'X파일'을 근거로 '삼성 떡값 검사' 7명을 실명으로 공개했었다. 검찰은 명예훼손 및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2심이 유죄와 무죄로 엇갈리더니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돼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삼성과 검사들이 뇌물을 주고받은 받은 죄가 더 크냐, 그것을 까발린 죄가 더 큰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터넷엔 대법원의 판결을 성토하는 네티즌의 글이 넘친다. 그런데 한 고교 교사가 인터넷 매체에 올린 글이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의 반응이 이렇더라는 거다. "선생님, 그 의원의 가장 큰 죄가 뭔 줄 아세요? 감히 삼성에 맞섰다는 거예요. 대통령도 함부로 못 하는데 한낱 국회의원이 상대할 수 있겠어요? 어림 없는 일이죠."

그렇다. 고등학생들도 이미 알고 있는 진실(?)을 노회찬만 몰랐다는 게 죄라는 것 아닌가. 이 사건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따로 있을 것이다. 누구든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얻은 정보를 공개·누설하면 처벌받도록 한 통신비밀보호법이 엄존한 것도 사실이다. 기계적 법률 해석에 따르면 노회찬은 유죄일 수 있 다. 그런데 그가 거명한 검사들은 증거 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로 죄다 무혐의 처리되지 않았던가. 물론 삼성도 무사했다. 이러니 검사가 검사를 상대로 한 수사가 제대로 됐겠느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더 한심한 것은 검사들을 무혐의 처리하고 비리 의혹을 공개한 기자와 국회의원만 기소했던 수사 책임자가 박근혜 새 정부의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된 대목이다.

법률조항이야 어떻든 이렇게 본말이 전복되고 가치가 전도돼서야 국민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사법 정의란 게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삼성에 맞선 죄'가 과연 국회의원 자리를 박탈당해야 할 죄일까. 오늘도 삼성은 휴대전화를 팔아 번 돈으로 철옹성 같은 성역을 쌓고 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우리를 건드리면 국회의원이건 누구건 한 방에 날아간다'는 심리적 검열 효과인지도 모른다. 고등학생조차 감히 삼성에 맞서면 큰일 난다는 걸 뼛 속 깊이 각인하고 사는 사회, 비리는 덮어주고 비리를 까발린 죄만 처벌하는 세상이 두렵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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