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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대통령의 리더십 /이택광

한국을 이끌 지도자, 기회·권리 담보하는 부드럽고 수평적인 '여우형 리더십' 필요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2-26 20:27:4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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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이사야 벌린은 톨스토이를 논하면서 여우형 인간과 고슴도치형 인간을 구분했다. 전자는 가치에 대해 개방적이고 후자는 하나의 가치만을 신봉하는 성격을 가졌다. 여우형 인간은 하나의 문제를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기 때문에 우유부단할 수 있지만, 고슴도치형 인간은 신속하게 결정해서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 벌린의 구분법은 리더십과 관련한 이론으로 많이 응용되었다. 여우형 리더십과 고슴도치형 리더십이 그것이다.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어떤 정책이나 계획을 집단적으로 실천할 때, 얼마나 오류를 줄일 수 있는지 여부이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다양한 가치를 향해 열려 있는 여우형 리더십이 고슴도치형 리더십보다 훨씬 더 판단에 개방적이기 때문에 오류를 범할 위험이 적다고 주장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다. 고슴도치형은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역량을 뛰어나겠지만, 그것이 잘못되었을 시에 용이하게 수정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여우형은 일을 실행하기 전에 가늠하고 재어보느라고 실천력이 고슴도치형보다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가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높을 경우 다른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대체로 고슴도치형을 강한 자유주의, 여우형을 약한 자유주의라고 부르는데, 후자의 경우가 향후 한국 사회를 주도할 리더십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본다.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적인 정부시절을 거쳐서 이제 개방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개방사회의 특징은 일방적인 탈권위주의라기보다, 부드러운 권위에 대한 지향으로 나타난다. 개방사회는 다양한 가치들의 유입을 경험할 수밖에 없고, 이런 까닭에 중요한 문제의식들을 토론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고슴도치형 리더십은 이런 개방사회에 적합하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 급속한 압축성장을 해야 할 시기에 고슴도치형 리더십은 괜찮은 효력을 발휘했겠지만,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고 확장시킬 수밖에 없는 시기에 이런 리더십이 공동체 구성원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18대 대선이 끝나고 박근혜 후보가 100만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번에도 결국 정권심판을 내건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민생공약을 내건 새누리당의 승리였다. 스윙보터로 50대가 결집했다는 분석은 이들에게 절박한 것이 자유보다도 안정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이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 한국 사회를 이끌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리더십은 특정인의 인격과 별반 관계가 없을 것이다. 리더십은 그 특정인과 관련한 정치세력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어떤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어떤 방식으로 서로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차후 5년을 주도하게 될 리더십은 고슴도치형이라기보다 여우형이어야하겠지만, 박근혜 당선인이 어떤 방식으로 리더십을 발휘할지 자못 궁금하다. 평소 보여 온 모습은 고슴도치형에 가까웠지만, 그것만으로 다양해진 사회를 통합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특히 20·30세대는 미국식 가치체계를 '상식'으로 표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슴도치형 리더십으로 이끌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자라기보다 '멘토'인데, 이는 고슴도치형처럼 수직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우형처럼 수평적인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고민을 들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평한 관계가 여우형 리더십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차기 대통령은 이런 리더십을 구현한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이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로서 이례적이라는 평가이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주도했던 고슴도치형 리더십이 여전히 유효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이제 시대적 과제가 달라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여우형 리더십으로 좀 더 유연한 개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들이 보장되는 권리 의식이 필요한 시기라고 하겠다.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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