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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대선과 기억의 정치학 /주유신

대선 최대이슈 '과거', 朴·文 프레임에 갇혀…진정한 현재화는 기억·망각의 승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1-28 19:42:40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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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물론 대선이다. 그런데 올해 대선에서 어쩌면 최대의 이슈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인지도 모르겠다. 두 후보 모두 '미래의 설계자'임을 주장하지만, '박정희의 딸'과 '노무현의 비서실장'이라는 멍에들은 결국 과거의 프레임 속에 두 사람을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박근혜 후보는 5·16 쿠데타, 인혁당 사건, 정수장학회 등 과거사와 관련된 문제들에서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그에 대한 명쾌하고 책임 있는 해결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 자체가 아니다. 어떤 과거이냐가, 아니 '어떻게 기억되는 과거'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핵심은 '기억'인 셈이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정전(正典)과 공식적 기록 그리고 문자에 의존하던 기존의 대문자 역사(History)가 아니라, 사적인 기억 그리고 구전이나 영상과 같은 다양한 양태의 도큐멘트들을 중시하는 소문자 역사들(histories)로 초점을 전환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역사쓰기에서 은폐되었던 많은 자료들과 억압받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살아나게 되면서, 공식적 역사에 반하는 대항 역사들의 생산이 가능해진다. 특히 일상적 차원에서 유포되며 공유, 해석,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서 한 집단의 대중 기억을 생산해내는 사적 기억이 특히 주목을 받게 된다.

원래 기억은 존재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핵적 요소이다. 그러나 기억은 개인의 자연적, 심리적 현상이기보다는 일종의 구성물로서 항상 사회적으로 매개되기 마련이다. 개인의 기억은 늘 파편적이고 불완전하며 '집단적 틀'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이 집단적 틀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에서 좌절된 집단의 욕망이 의식의 표면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생겨난 '정치적 무의식'일 수도 있고, 안드레아 후이센에 따르자면 상업적 미디어들이 생산해낸 역사, 과거, 기억 등을 통해서 대중이 갖게 된 '상상된 기억'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 집단이 지닌 상처와 고통은 애도라는 서술 행위를 통해서 상상적으로 해결되는 이데올로기를 취한다. 프로이트는 우울증이 대상의 상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학대에 빠지는 것이라면, 애도는 그 상실을 인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과거에 대한 애도는 외상적인 기억을 지배적 역사 속으로 통합시키는 일종의 장례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항상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기획이다. 박근혜의 정치적 존재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박정희 신드롬'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집권 기간에 산업화를 통해 이루어진 경제 기적의 이면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망각의 정치학이 작동, 선별된 과거만을 전통과 유산으로 수립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오도된 기억이 주체가 되는 반면에 대중은 모든 부정성이 배제된 유토피아적 과거로 무력하게, 강박적으로 회귀하고 있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공적으로 순환되는 문화적 기억을 대중 문화의 산물들을 통해서 마치 자신이 실제로 겪은 것처럼 경험하게 되는 보철 기억(prosthetic memory)을 언급할 수 있다. 과거는 오직 역사라는 상징적 텍스트를 통해서만 접근되고 기억될 수 있는데, 나날이 가속화되는 미디어의 포화 속에서 역사의 자리를 가상적 이미지와 상업적 스토리텔링이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문화적 기억은 역사와 같은 공식적 담론 바깥에 존재했지만, 이런 보철 기억들은 역사의 공적 사건들을 굉장히 효율적이거나 강렬한 방식으로 사적 기억으로 바꿔줄 수 있다. 최근의 과거를 논쟁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는 '남영동 1985'나 '26년'과 같은 영화들은 공식 역사와 대항 역사, 지배적 기억과 대중적 기억이 헤게모니를 얻기 위해 정치적 싸움을 벌이는 공간인 셈이다. 어떻든 과거의 진정한 현재화는 과거를 둘러싸고 기억과 망각이 진검승부를 겨루는 일이며,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기억의 정치학'이 어떻게 작동하고 또 어디로 향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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