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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영화와 성(性)이 급진적으로 만났을 때… /주유신

근대 대표 권력장치 양자의 뜨거운 결합…시대 풍미 걸작 창조, 무한 가능성에 기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7-11 19:30:45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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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전당에서 최근에 '영화, 혹은 정치의 기억'이라는 주제의 프로그램이 상영되었다. 그 중의 일부였던 '성과 성치' 섹션에는 미국의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에 의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의 초연과 맞먹는 영화 역사의 획기적인 순간"이라는 극찬을 받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72)에서부터 영국의 영화이론가 스티븐 히스가 "본질적으로 주체의 역사적 기능의 한계를 표현하는 죽음 충동의 영화"라고 평가한 '감각의 제국'(오시마 나기사, 1976)에 이르기까지, 성정치학과 영화의 급진적인 만남을 대표하는 영화들이 포함되어 있다.

서구의 1960년대는 전반적으로 혁명의 시대였다. 기존의 지배적 질서 내에서 소수자, 주변인으로 억압받고 침묵을 강요당하던 여성, 동성애자, 유색인종 등이 시민권 투쟁을 벌여나갔고 청년 세대는 반전운동과 반문화운동 등을 통해서 기성 세대의 가치관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혁명의 뜨거운 열기는 푸코가 근대 이후 등장한 '생체 정치(bio-politics)'의 가장 핵심적 권력 기제라고 주장했던 '성'의 영토로까지 이어지면서, 성해방의 물결이 일어났다. '좌파 프로이트주의자'로 불리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빌헬름 라이히 등의 이론들이 성해방의 물결을 추동했다면, 영화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이런 흐름을 가장 민감하고 격렬하게 담아냈다. 이번 상영작들이 주로 1960년 후반에서 70년대 중반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 중에서도 충격적인 이미지와 단호한 메시지들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이 얼마나 파시즘적인지를 보여주는 유고슬라비아 영화 'WR: 유기체의 신비'(두산 마카베예프, 1971)는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동구 공산당에서 축출당하고 미국 FBI에게 구속되었던 라이히의 '불온한' 사상과 이에 기반한 성치료 방법 그리고 성해방 운동을 통속화하고 타락시키는 당대 미국의 다양한 현실을 기록 필름으로 보여준다. '섹스 없는 사회주의는 건조하고 죽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여주인공 밀레나가 '개인의 행복은 국가에 봉사하는 데에 있다'고 믿는 소련의 스케이팅 선수인 블라디미르 일리치(레닌을 암시하는 인물)에게 살해당하는 허구적 에피소드로 구성된 후반부는 죽은 밀레나가 갑자기 눈을 뜨고 "블라디미르는 진짜 빨갱이 파시스트다"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제목의 'WR'이 '빌헬름 라이히'와 '세계 혁명'의 약자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마카베예프는 극단적으로 성을 소비하는 미국과 위선적으로 성을 억압하는 소련, 남성 성기의 주형을 뜨는 미국 여성 조각가의 모습과 스탈린에게 환호하는 소련 군중의 모습 등의 병치를 통해서 두 사회 모두를 물신에 의해 지배받고 성적 억압에 몰두하는 닫힌 세계로 비판하는 셈이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프랑스 '6·8혁명'의 실패에 대한, '감각의 제국' 역시 1960년대 일본 적군파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회한 어린 성찰과 패배주의적 감성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이런 영화적 실험이 어떤 한계에 놓여있는지를 엿보게 한다. 탐미적이고 자학적인 세계에의 탐닉이 결국 퇴행과 죽음으로 이어지고 마는 두 영화의 공통적인 서사는 광장에서의 혁명이 좌절된 후에 스스로를 밀실에 유폐시켜버린 좌파 지식인들의 자화상을 여실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성과 정치, 영화와 성 간의 경계들을 과격하게 무너뜨린 이런 영화들은 오랜 논쟁거리였던 예술과 외설, 에로 영화와 포르노 영화의 이분법 역시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여하튼 근대를 대표하는 두 개의 권력 장치인 성과 영화, 이 양자의 뜨거운 만남은 한 시대를 풍미한 영화사적 걸작들을 창조해냈고, 한국의 경우에는 세기말에 등장한 장선우의 '거짓말'(1999)이 사도마조히즘이라는 성적 도착을 소재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영화적 테러'를 감행한 바가 있다. 그러나 그 만남의 가능성들이 아직도 무한히 열려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업그레이드된 버전들에 대한 기대 역시 무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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