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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프리즘] 바다, 그 망각의 역사 /유일선

조각난 해양수산부, 신해양시대에 한국이 미래에 치를 망각비용 두렵잖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4-29 19:55:2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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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족·nation)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유명한 답은 에른스트 르낭이 1882년 소르본 대학에서 행한 강의이다. 그 내용 중 눈에 띄는 점은 그가 '국민'의 형성 과정에서 '망각'과 '기억'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배경의 언어, 종교,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 국민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먼저 망각이 필요하다. "망각과 역사적 누락은 국민을 창조하는 데 핵심적이다."

한편 하나의 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통의 기억 역시 필요하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국민이란 많은 일을 공유하면서도 또 그만큼 많은 사실을 잊어버리는 개체들의 집단이다." 역사적 전환기마다 각국은 무엇을 망각하고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결정하여 국가발전의 방향을 설정한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자. 가야는 먼 인도의 아유타국과도 교역했다. 백제는 서해를 내해 정도로 여겼다. 통일신라는 장보고로 상징되는, 동북아시아 해상무역권을 장악한 해양국가였다.

그런데 현재 한국인에게 바다는 '망각'된 존재다. 그 망각은 언제 시작된 것인가. 몇 개의 설명이 있다. 첫째, 고려 삼별초 항쟁부터라는 설. 서남해 섬을 근거로 끝까지 저항하는 삼별초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원과 고려 조정이 섬을 비우는 공도(空島) 정책을 편다. 그때부터 바다가 우리 삶에서 멀어졌다는 설명이다. 둘째, 명나라의 '해금(海禁)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설. 명이 당대 최고의 해상국가였다는 것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진출했던 정화의 원정대가 증언한다. 그런데 명이 북방 유목민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관심을 내륙으로 돌리면서 바다로 나가는 것을 금하는 해금 정책을 취한다. 명에게서 자유롭기 어려운 조선 역시 이 정책을 따르면서 바다가 잊혔다는 것이다. 셋째, 왜구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공도 정책 때문이라는 설. 해금정책으로 명, 조선과의 교역이 어려워진 일본의 불법적 교역활동, 즉 왜구라는 해적집단의 조선 도서지방의 침탈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섬을 비웠다. 그때부터 바닷길이 막혔다는 설이다.

위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드는 의문이 있다. 삼별초가 진압되고, 명의 해금 정책이 풀리고, 왜구의 침탈이 잦아들면, 다시 바다로 나아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바다는 계속 잊혀졌는가. 왜 복원되지 못했는가.

조선왕조의 창업 시기를 주목해 보자. 내륙을 안정적으로 확고하게 다스리기에도 힘이 부쳤을 신생 조선. 그 국력으로 섬과 바다에까지 국왕의 지배력이 미치게 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조선의 섬과 바다는 원칙적으로 국왕의 통치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행정편제에서 사라진다. 만약 조선의 백성이 바다로 나가거나 섬에서 살게 되면 국왕의 통치권을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국가 탈출죄 또는 반역죄로 다스려졌다. 왜구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 세종 이후에도 이 정책은 그대로 유지된다. 조선 초 태종의 공도 정책은 조선왕조를 관통하는 이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 조선의 바다와 섬은 정상인이 가서는 안 되는 곳, 오직 범법자와 비천한 인간들, 왜구의 소굴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바다는 이념적으로 망각되었고 육지와 견줄 수 없는 비천한 공간, 무용의 공간으로 변했다.

이후 조선이 치른 '바다의 망각비용'은 혹독했다. 해양세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근대화의 기회를 잃었고 결국 조공을 받던 옆 섬나라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다.

현재, 바다는 복원되었나. 기업들은 여전히 육지의 좁은 골목의 상권에 매달려있다. 재벌기업이 빵집, 순댓집과 떡볶이집까지 손을 대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는 별 고민 없이 해양수산부를 조각내어 여러 부처에 나누어 주었다. 아직도 해양사업은 '뱃놈'의 일이라는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교역의 바다에서 자원의 바다, 과학의 바다로 바다의 영역을 넓혀가는 신해양 시대에 바다를 계속 망각한다면 미래에 치를 망각비용이 두렵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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