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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배유안

법적 죄악 아니지만 켕기는 욕망 채우기, 등산·파도타기 통해 에너지·생명력 충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3-02 20:44:30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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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시작한 작품들이 해를 넘기고서도 하나같이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아 한 몇 달 죽자고 일을 했다. 감기 몸살을 앓아가면서, 입술이 터져가면서 하나하나 겨우 끝내고는 짐을 싸서 하와이로 날았다. 꼬박 일 년 동안 일만 해댄 나에게 보상 휴가를 주는 것이었다. 공항 약국에서 아직 떨어지지 않은 기침약과 몇 번이나 터졌다, 아물었다 하는 입술에 바를 연고를 사서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는 내가 마땅한 휴가를 즐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먼저 와 있던 일행과 합류하여 첫날부터 와이키키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할 때까지도 일을 끝낸 개운함에 마냥 누리는 해방감이 당연하다 여겼다. 다들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을 각자 조절할 수 있는 프리랜서들이라 이런 장기간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까지 즐거움에 보태졌다.

그런데 거의 날마다 보드를 둘러메고 열대어가 많은 바다가 어디니, 파도가 좋은 바다가 어디니, 오늘은 어느 쪽 바다가 바람이 좋니 하며 찾아다니며 놀다가 즐거움이 목까지 차오르자 마침내 누군가의 입에서 '가책이 된다'는 말이 나오고 어느새 화제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로 모아졌다. 우리가 외화를 쓰고 있다는 것, 지나치게 잘 놀고 있다는 것이 슬그머니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연스레 평소 '길티 플레져'라고 느꼈던 경험들을 풀어내 보았는데 생각 밖에 많았다. '길티 플레져'라는 게 Guilty (죄의식)와 Pleasure (쾌락)의 조합이니 가책을 느끼면서도 계속 즐기는 것, 법적 죄악은 아니지만 밝고 건전한 사회를 가꾸는 데에는 다소 켕기는 욕망을 채우는 행위이다. 나 같은 경우는 조금만 부지런을 떨거나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충분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것에 차를 사용한 경우, 병들고 굶주린 아이들의 존재를 알면서도 냉장고에 식재료들을 상하도록 방치했다가 버리고는 또 장을 봤을 때, 전기 플러그를 뺐다 끼웠다 하는 게 귀찮아서 늘 꽂아두고 있는 것 등에 가책을 느낀 적이 많았다. 말이나 글로 남에게 내놓기 부끄러운 사실들도 적지 않았다. 누군가는 건강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포기할 수 없다거나, 이상기온의 원인이 되는 걸 알면서도 에어컨을 끄지 못하는 것, 안 그래야지 하면서 인터넷 영상들에 매혹되는 것, 아내와 딸은 안 되지만 걸그룹들의 하의 실종과 엉덩이춤은 좀 더 과감해지기를 기대하는 것 등등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사회적인 예의, 규범과 인간적 욕망이 서로 상충되는 지점에서 지금 누리고 있는 쾌락 (Pleasure)이 가책(Guilty)을 외면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다움의 울타리를 넘지 않은 증거가 아니겠느냐, 최대한 길티거리를 줄이거나 보상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하지 않을까를 덧붙임으로써 어물쩍 정리를 했다. 하지만 이것이 자기합리화로 은근슬쩍 사면을 주는 또 다른 길티의 한 단면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바다 속의 또 다른 육지를 내려다보며 황홀한 열대어와 함께 유영을 하면서 느낀 감동, 물결보다 더 물결 같은 움직임의 수화(手話) 춤인 전통 훌라춤을 배우며 솟았던 희열, 노을을 등지고 바나나 껍질 같은 길쭉한 보드에 서서 긴 노(패들)를 젓는 모습에 반해 그걸 해보겠다고 몇 시간을 바다와 사투를 벌인 도전(겨우 무릎으로 반만 서서 파도를 넘나든 것에 만족하고 그나마도 며칠간 허벅지 근육이 아파서 어기적거리며 걸어 다녔지만), 그러면서도 산에 오르고, 파도타기, 스노클링을 매일 거르지 않은 왕성한 열정 등을 통해 나는 몸의 발견과 함께 끊임없는 움직임의 행간에서 문득문득 솟아나는 생명력이 어떻게 정신을 북돋우며 사고를 진전시키고, 치우쳤던 자해석을 분별하게 하는가를 발견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 또한 나의 미래 삶에 대한 기대를 팽창시켰다. 그렇다면 이번의 즐거움은 Guilty(유죄)가 아니라 Innocent(무죄)라는 데에 생각이 이르러서야 나는 한구석에 남아 있는 자기합리화의 부담에서 벗어났다. 그래도 돌아가면 아마 나는 몇 달간 충분히 검소하게 살 것이고 자동차를 세워 둘 것이며 물과 전기를 살뜰히 아낄 것이다. 무엇보다 내 충전된 에너지와 생명력을 넉넉히 나눌 것이며 창작에 몰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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