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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다문화 사회 한국의 현재 /이한숙

또 한 해가 가지만 이주민 처지 그대로…권리 찾기 위한 행동, 내년엔 빛을 발하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2-28 20:34:46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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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곧 새해를 맞아야 할 때가 되어버렸다. 이맘때면 한 해 동안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인지를 떠올려보게 된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지 20여 년이 넘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처참한 노동조건은 1990년대 중반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농성한 이주노동자들을 통해 처음 한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주민들의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2000년만 해도 채 50만 명이 되지 않던 국내 이주민은 2011년 약 140만 명이다. 이주민의 수가 늘어나면서 '자랑스러운 단일민족국가'라는 말은 점점 듣기 힘들어졌고, 어느덧 '다문화'라는 말이 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이주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변했는지는 여전히 회의가 생긴다.

이번 달 초 고용허가제로 입국해 부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한 네팔노동자가 기업주에게 심하게 얻어맞고 승용차에 실려 외진 곳에 끌려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당한 뒤 도망쳐 나온 사건이 있었다. 같은 공장의 네팔 노동자들은 관리자와 기업주에게 일상적으로 욕설을 듣고, 위협을 받으며 일했다. 연장·야간근로수당은 8개월째 체불된 상태였고, 12월의 추운 날씨인데도 기숙사에는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아 온수도 나오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현금인출카드와 여권은 회사가 압류하고 있었고, 탈의실까지 설치된 CCTV를 통해 매일 감시당하고 있었다. 폭행당한 이주노동자는 진술서에 "저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기만 했습니다. 저를 살려주세요. 저는 더 한국에서 살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만 보면 무서워요. 한국에 법이 있다면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라고 썼다. 왜 이제야 회사에서 나왔느냐고 했더니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제한' 조항 때문에 다른 회사로 옮길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강제출국 당하거나 미등록체류자가 될까봐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올해 5월 청도에서는 또 한명의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이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53번이나 찔려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23세, 한국에 온 지 1년, 아이를 낳은 지 19일째 되는 날이었다. 입국한 지 8일 만에 정신병을 앓던 남편에게 살해된 탓티황옥 씨 사건 이후 10개월 만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한 베트남 여성은 "우리가 가난해서 남편에게 자꾸 맞아 죽어요"라며 울었다.

3, 4월에는 인천신항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했던 베트남 노동자 10명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파업을 주도해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최저임금인 시급 4110원을 받았던 180명의 베트남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 사흘 동안, 올해 1월 이틀 동안 아침과 저녁 밥값으로 월 24만 원씩을 공제하는 데 항의해 자발적으로 파업을 벌인 대가였다. 합법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했던 이주노동자들의 유일한 노동조합인 이주노조의 합법성에 대한 판결은 아직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그동안 역대 위원장들은 차례차례 강제출국 당했다. 법무부는 합법적 체류자격을 가진 현 미셸 위원장에게조차 강제출국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일으키고 있는 변화의 바람도 분명히 느껴진다. 이주민들은 더는 자신의 권리를 찾는 데 한국인의 도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먼저 익힌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민들은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고, 생활에 쫓기면서도 친구를 도와 병원, 노동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동행하며 통역을 자처하고 있다. 필리핀에, 미얀마에, 네팔에, 가난해서 공부하지 못하고 일터로 향해야 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고 십시일반 돈을 모으기도 한다. 한국사회로부터 받기만 할 수는 없다고, 같은 소수자들과 연대해야 한다고 정기적으로 장애인 야학에 전통 음식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지역의 다문화 축제도, 세계이주민의 날 기념행사도 이제는 부산경남지역 이주민 공동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진행한다.

다가오는 새해는, 더는 하라는 대로만 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지 않으며, 불쌍해서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이들로 남지 않으려는 이주민들의 노력이 지역 사회를 깨우는 신선한 바람으로 불어제치기를 기대해 본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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