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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해운대 아이파크와 9·11 테러 /전진성

건축가 리베스킨트, 해체주의 건축 각광…화려한 미관 이면에 불통 불러올 수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2-26 20:51:30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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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를 달리다 보면 푸른 바다를 머금은 거대한 유리 건축물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난 10월 말 입주를 시작한 해운대 아이파크다. 미관상으로는 국내에서 필적할 상대가 없을 소위 '명품 건축물'이다. 이 건물의 설계자는 '해체주의 건축'으로 세계적 명성을 구가하는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이다. 그의 건축은 이미 서울 삼성동의 아이파크 타워를 통해 국내에 선보인 바 있는데, 해운대 아이파크는 단색의 거대한 유리 평면이 부산의 상징인 동백꽃잎과 돛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흐름들로 '해체'되어 더욱 돋보인다.

근래에 들어 해체주의 건축은 도시에 미래지향적인 외관을 부여하는 최상의 양식으로 각광받고 있다. 얼마 전 성급한 개관으로 물의를 빚은 영화의전당도 각 부분들이 불균형하게 접목된 새로운 건축미로 언론방송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해체주의라고 다 각광을 받은 것은 아니다.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세워질 용산국제업무지구에는 '더 클라우드'라는 이름의 초고층 쌍둥이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인데, 이 건물의 디자인이 국제적인 논란을 빚고 있다. 두 빌딩의 상층부 10개 층을 구름다리처럼 연결하는 이른바 '클라우드 디자인'이 9·11 테러 직후 화염에 휩싸인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9·11 테러 희생자 유족들의 강한 문제제기에 대해 설계회사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지만, 설계자가 바로 다니엘 리베스킨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리베스킨트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재건축 종합설계안을 마련한 건축가이다. 건물이 붕괴되고 남은 공터를 어떻게 재건하는가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제 공모를 통해 2003년 선정된 리베스킨트의 설계안은 '기억의 토대'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을 달고 있는데, 원래의 쌍둥이 빌딩이 사라진 바로 그 자리를 네모꼴로 움푹 파인 빈 공간으로 남겨두어 방문객들이 파괴의 흔적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하며 그 주위로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대신할 총 6채의 고층건물이 배치된다. 이 건물들 중에서 가장 높고 큰 건물인 '자유의 탑'은 유리 재질의 외벽에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이 비치도록 배치된다. 9·11 테러로 위협받은 '아메리칸 드림'을 다시 이어간다는 취지이다.

리베스킨트의 설계안은 건축적 평가를 떠나 '테러와의 전쟁'을 감행한 미국 부시정권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과연 건축가 리베스킨트는 어떠한 인물인가? 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때 살아남은 폴란드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미국 이민자로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다. 그의 해체주의 건축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가족사에 깃든 20세기의 비극적 역사를 충격적으로 재현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세계라는 미국적 이상을 대변한다. 그가 세운 건축물 중 가장 의미심장한 것으로는 독일 베를린의 유대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그야말로 해체주의 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유대박물관은 마치 부러진 뼈대처럼 지그재그형을 이루고 있으며 온통 비틀리고 불안정한 공간을 통해 상실과 공허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희생자의 고통을 기억하는 건축물의 설계자가 어쩌다가 용산의 '더 클라우드'처럼 희생자의 고통을 망각하는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것일까? 해답은 뉴욕 '자유의 탑'에서 찾을 수 있다. 해체주의 건축은 분명 희생자의 고통을 드러내기에 안성맞춤이지만, 자칫 현란한 미관에 기억은 가려지고 상업성만 남을 수 있다. 더구나 그것이 미국식의 '자유'라는 이념과 결합될 때 고통의 기억은 성공담으로 변질되고 비극의 장소는 또 한 차례의 테러에, 이번에는 승자의 역사와 사회적 불통이라는 더욱 치명적인 테러에 해를 입게 된다.

해운대 아이파크도 이러한 사안과 전혀 무관한 것 같지는 않다. 해체주의 건축은 이 땅에서 아메리칸 드림에 상응하는 코리안 드림의 홍보수단이 된 것은 아닐까? 한 도시의 삶과 기억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고 주변을 그늘지게하면서도, 미관만 보고 '첨단의 건축', '열린 공간'으로 치부되는 이 괴물을 과연 '선진' 부산의 랜드마크로 보아야할까, 아니면 일종의 환경적 테러로 보아야 옳을까?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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