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에 이사를 왔을 때는 가을 무렵이었다. 나지막한 작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집마다 감나무에 달린 굵고 붉은 감들이 그려내는 풍경이라니. 그런데 이사를 온 집은 동네마다 그 흔한 감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감 몇 접 샀다. 마을 대밭에 가서 대나무를 베어다 처마 끝에 걸고 감을 깎았다.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다. 혼자 먹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팔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금은 힘들었으나 그리운 얼굴들 떠올라 대나무에 한 줄 한 줄 걸려가는 감들을 깎고 거는 그 밤 내내 즐겁고 행복했다.
올해도 나는 문밖에 꽃단장을 했다. 감을 깎아 꽃등처럼 내걸은 것이다. 이를테면 늦가을에서부터 겨울 사이에 걸친 우리 집의 계절 인테리어인 셈이다. 처마 끝에 붉은 주렴처럼 내걸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볼 만하다.
이만한 장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작년에도 다 된 곶감을 걷어 넉넉한 양은 아니지만 작은 상자에 담아 이런저런 내가 살아오며 마음의 빚을 졌던 지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지리산의 햇빛과 바람, 새소리와 처마 끝 풍경소리와 작은 개울물 소리를 엮어서 곶감을 만들었습니다. 양도 많지 않고 때깔도 그리 곱지는 않지만 맛보시기 바랍니다. 깨끗이 말리기는 했으나 땀내 나는 제 손길이 꼼지락꼼지락 간을 더하여 심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처마 끝에 풍경이 뎅그랑거린다. 곶감이 잘 말라가고 있다. 작년에 미처 보내드리지 못한 분이 누가 있을까. 누군가를 위하여 나눌 일이 있다는 것, 나누어줄 누군가가 아직 내 곁에 남아있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그런데 문밖의 세상은 참 흉흉하다. FTA(자유무역협정)뿐만이겠는가. 연말연시를 앞두고 미담덕담은커녕 쏟아지는 악취들로 마음이 불편하기가 짝이 없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개발지상주의자, 머릿속에 온통 포크레인이나 불도저와 같은 생각만 들어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았으니 어찌 나라가 순리를 따라 물 흐르듯 풀려가겠는가. 국민들 스스로 발등을 찍은 꼴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자기도착에 빠져 4대강을 청계천처럼 만들어놓고 나중에 잘했다고 할 것이라니, 정상적인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도 환경과 생태문제에 그렇게 몰상식하고 무지몽매하기도 힘들 것이다.
하긴 강가에 쌓여있는 아름다운 은모래밭을 '저렇게 자원을 방치하면 안 된다, 저게 다 돈이다'라고만 생각하는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겠는가.
제주도 강정마을도 마찬가지다. 용암이 흘러내려 모두 한 바위덩어리로 이루어져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 구럼비 지대에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벌써 4년째 마을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대립하게 만들고 생계마저 고통스럽게 몰아가고 있다.
글을 쓰다가 화가 난다. 마당에 나가 나무만 해다가 쌓아놓고 아직 장작을 패지 않은 통나무들 몇 개 내려놓고 도끼질을 했다. 퍽퍽 도끼질을 해댈 때마다 쩍쩍거리며 장작이 쪼개진다. 일종의 스트레스 풀기다.
작은 땀이 흐르고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간 몸이 좋지 않아서 그날그날 분량만 장작을 패서 불을 땠는데 오늘은 한 10여 일분의 장작을 팼다. 며칠 장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얼마 전 산골 작은 마을에서 조그만 행사를 했다. 나눔행사의 한 일환으로 강정마을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4년 동안 열어온 동네밴드 행사였는데 올해는 특별히 감동후불제라는 봉투를 만들어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손님들께 나누어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들어온 후원금 200여만 원 가운데 100만 원을 강정마을에 보내고 나머지는 지역장학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작년에는 남북어린이어깨동무재단과 지역장학금으로 수익금이 쓰였다.
아직 세상에는 따뜻한 손길을 가진 이들이 많다. 추운 겨울 이처럼 고마운 마음이 꼭 필요한 이웃들이 많다. 어느 누구가 아닌 바로 당신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