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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고졸 은행원 /장재건

고졸 은행원 채용 반가운 일이지만 공정한 경쟁 통한 성장 토대가 우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8-24 20:18:2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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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교 동기생들 몇몇의 모임이 있었다. 상고 출신인 우리의 화제는 고교 졸업 후 첫 직장 이야기로 이어졌고 당시 월급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부산의 중견기업에 입사해 당시 첫 월급으로 18만 원이라는 거금(?)을 받고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었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에 모두가 파안대소하기도 했다. 기업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당시 대졸 신입사원의 월급이 20만원 조금 넘는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동기들의 첫 직장 1순위는 당연히 화이트칼라의 대명사였던 은행이었다. 당시 60여 명에 달했던 한 반에서 20명 가까이가 은행에 취직을 했다. 나머지는 일반 기업체를 가거나 대학에 진학을 하기도 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하는 등 일부를 제외하곤 자리가 없어 취직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의 이야기다.

30년 가까이 지난 요즘 새삼 고졸 은행원이 화제다. 은행권에서 불기 시작한 고졸 채용 바람은 대기업까지 번지고 있다. IMF 사태이후 대졸자들의 취업난에다 학력 인플레가 심해지면서 사라졌던 고졸 은행원의 재등장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은행에 취직이 확정된 패기에 찬 여상 학생들을 보면서 옛날 은행에 합격했던 동기들이 기뻐하던 모습이 겹쳐진다.

은행권은 앞으로 3년간 2700여 명의 고졸 인력을 뽑을 예정이라고 한다. 전체 채용 인원의 12% 가량이다. 하지만 일부 은행에서는 벌써부터 인적 자원 고갈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상고 학생이야 부족하지 않지만 은행이 원하는 우수 인력은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간 갑작스레 고졸 은행원 모시기 경쟁이라도 벌어지지 않을지 괜한 걱정도 된다. 관치에 의한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아직까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기업들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고졸 은행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것도 걸림돌이다. 

세월이 지나 다시 고졸들이 화제에 오르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큰 꿈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요즘 고졸 은행원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비정규직이라는 점은 흔한 일이라고 해도 학벌사회의 공고한 벽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문계고든 전문계고든 대부분이 대학에 가는 사회에서 그들이 뚫어야 할 학력의 장벽은 더 높아졌다. 

하긴 이런 온갖 어려움을 뚫고 각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고졸 출신들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심심찮게 화제가 되곤 한다.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피눈물 나는 그들의 노력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도 한다. 요즘 고졸 출신들의 롤 모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고졸 출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롤 모델들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다. 신화라는 말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이뤘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모두가 신화를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다. 

너무 비관적인 이야기로 흘러가 버렸지만 우리의 현실이 그랬고 지금은 더 심해졌다. 넘쳐나는 대졸 출신에다 대학 사이의 서열 또한 더 엄격해졌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 말리는 사교육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계고 출신은 마치 이런 전쟁에서 낙오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이상한 현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시혜'처럼 취직자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시혜'도 없는 것보다야 낫다. 그러나 그들의 선배들이 겪어야 했던 고졸에 대한 온갖 차별이 더 공고해진 사회에서 또다시 성공신화만 주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졸 출신 채용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선 고졸과 대졸 출신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이라는 멍에를 벗겨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공정한 경쟁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토대가 마련돼야 무조건적인 대학 진학이 줄어들게 되고 철옹성 같은 학벌사회도 조금씩 무너지게 된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뿌리깊은 학벌주의가 관치와 이벤트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첫 출발을 하는 고졸 출신 직장인들에게 앞으로는 더 나은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편집 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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