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은유로 되어 있다. 가령 '달란트의 비유'도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이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을 불러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었다. 주인이 돌아와 보니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종은 열심히 장사를 해 그 돈을 두 배로 불려 놓았다. 그러나 1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 돈을 땅에 묻어 놓았다가 주인에게 내놓았다. 주인은 크게 화를 내면서 그 1달란트마저 빼앗아 다른 종들에게 줘 버렸다. 나는 이 이야기를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기도 한다. 바로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이다.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들이다. 그러나 모든 주주들이 직접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개는 전문경영인이 주주들을 대신해서 경영을 맡는 것이 보통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에 주주와 전문경영인의 이해관계가 같은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다. 경제학에서는 이것을 '주인-대리인 문제'라고 부른다. 가령 전문경영인이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한 가지는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되지만 자신에게는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는 선택이고, 다른 한 가지는 반대로 주주들에게는 그다지 이익이 되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큰 이익이 된다면 과연 전문경영인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대리인의 마땅한 도리로 말한다면 전문경영인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주인인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옳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주들은 전문경영인만큼 경영상의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대리인이 주인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바로 도덕적 해이이다.
우리 사회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바로 외환위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의 원인을 꼭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많은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마구잡이로 해외에서 빚을 낸 것이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바로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가 외환위기의 원인이었다는 뜻이다. 살다 보면 개인도 실수를 할 때가 많다. 다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고 반성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개인도 그러한데 한 나라, 한 사회가 그래야 하는 것은 더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난 외환위기로부터 전혀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가, 얻었다손 치더라도 이미 잊어 버린 듯싶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를 온통 들끓게 만든 사건은 바로 저축은행 사태이다. 저축은행의 주인은 예금주들이고 경영진은 대리인이다. 그런데 이번에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몇몇 저축은행들을 보면 예금주들이 맡긴 돈을 자기 금고처럼 마구잡이로 사용한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동안 감독기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또 알고 보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물론 심지어 감사원의 고위간부라는 사람들까지 저축은행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부실을 눈감아 주었다고 한다. 눈감아 준 정도가 아니라 부실 저축은행들을 감사하지 말라는 청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감독기관들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다. 그런데 국민을 대리해서 저축은행들을 감독해야 할 대리인들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자기 할 일을 내팽개친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이 '금산분리'의 문제이다. 금산분리란 재벌기업들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우리 은행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덩치를 키워야 하고, 그래서 재벌들이 은행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바로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다. 은행의 주인은 당연히 예금주들이다. 그런데 만약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고서 경영진의 임면권을 손에 쥐게 된다면, 과연 그 은행의 경영진들은 주인인 예금주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까, 재벌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까? 지금도 재벌 소유의 보험회사 등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고객들에게는 그 이익을 한 푼도 돌려 주려 하지 않는 마당에, 재벌이 은행을 소유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실수로부터 어렵게 얻은 교훈을 버리지 말자.
참사회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