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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인정국(人情國) /신명호

비자금 등 이름으로 뇌물 판치는 사회…궁극적 해악은 서민 대중이 떠안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6-15 20:07:12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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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중에 '인정국(人情國)'이라는 짧은 글이 있다. 제목만 보면 인정 넘치는 어떤 나라 이야기가 아닌가 하겠지만 전혀 아니다. 인정국은 바로 뇌물이 판치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니라 성호가 살던 조선시대 이야기이다.

성호에 의하면 조선은 평상시 인정의 나라로 불렸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인정 없이는 성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정은 바로 뇌물의 다른 이름이다. 인정이 넘치다 보니 인정의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사인정(私人情), 별인정(別人情), 인정물(人情物), 인정금(人情金), 인정포(人情布), 인정미(人情米) 같은 용어들이 널려 있다. 사인정은 사사로이 주는 인정이고 별인정은 특별히 주는 인정이니 조선시대에는 공식적으로 주는 인정도 없지 않았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인정물, 인정금, 인정포, 인정미라는 말에서 물건, 현금, 포목, 쌀 등 돈되는 것은 뭐든지 인정으로 활용했음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인정 문화를 선도한 주체는 역설적이게도 국왕이었다. 중국 또는 일본, 여진 등 인접국과 외교현안이 발생하면 국왕은 공식적인 외교보다는 비공식적인 인정으로 해결하려 들었다. 조선 건국 직후 명나라와의 외교현안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녀(貢女)와 진헌(進獻)이었다. 고려 말 몽고 간섭기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원나라에 공녀와 환관 같은 사람은 물론 비단, 황금, 해동청 같은 특산품을 바쳤다. 이는 고려 멸망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 초기의 국왕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명나라에 바치는 공녀와 진헌을 줄이려 했다. 그때 국왕들은 비공식적인 인정을 적극 활용했다. 명나라 실력자 중에 조금이라도 조선과 인맥이 닿는 사람이 있으면 은밀하게 접근해 우선 인정에 호소했다. 그렇게 해서 공녀와 환관을 바치지 않게 됐고 진헌도 대거 경감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는 좋게 보면 국익을 위한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명나라 실력자는 점점 더 많은 인정을 원하게 되고 그것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간주하게 됐다. 원하는 만큼의 인정을 주지 않으면 도리어 몰인정하다고 원망하며 마땅히 해주어야 할 것도 해주지 않게 됐다. 그래서 조선 중기에 들어서면 조선과 명나라 사이에 별다른 외교현안이 없어도 명나라 실력자들에게 막대한 인정을 써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인정문화가 조선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권이 크게 걸린 경제 분야에서 인정문화가 발달했다. 조선은 농업사회였기에 경제적 부는 결국 농민에게서 나왔다. 농민은 1년간 농사 수확량의 10분의 1을 전세 명목으로 납부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 특산물을 공물 명목으로 납부했다. 조선 후기에 전세와 공물 등으로 농민이 국가에 바치는 생산물의 양은 전체 생산물의 30% 수준에 달했다. 결코 소소한 비율이라 할 수 없는데 여기에 또 인정이 추가됐다. 설상가상 인정에는 한계도, 기준도 없었다. 조선 초기 전세와 공물은 지방 향리들이 수취하였지만 후기에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공물은 이른바 공인(貢人)이 수취했다. 공인은 공물 납부권을 확보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에게 인정을 쓰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농민들에게서 더 많은 인정을 받아냈다. 당시에 인정이 얼마나 넘쳤는지 "진상품은 꿰미로 꿰고, 인정은 말 바리에 가득 싣는다"는 속담이 생길 정도였다. 본질인 진상품보다 뇌물인 인정이 넘치도록 많았던 것이다.

조선시대 인정의 피해는 결국 농민에게 다 돌아갔다. 중국의 실력자에게 가는 인정은 물론 향리에게 가는 인정도, 공인에게 가는 인정도 결국은 농민 부담이었다. 성호는 '인정국'이라는 글의 결론 부분에서 중국 한나라의 농민들이 과중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일으킨 황건적의 난을 이야기했다. 인정에 짓눌린 조선 농민들이 제2의 황건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는 비자금이라는 명목의 뇌물이 횡행하고 있다. 비자금의 부담은 궁극적으로 서민대중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비자금의 악습이 현대판 황건적을 만들지나 않을까 두렵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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