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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은진수'라는 비극 /박희봉

엘리트 날려버린 권력·돈의 광풍, 참가치 회복해야 사람·사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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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수. 만 50세, 소띠. 연합고사 200점 만점을 받고 부산상고에 입학. 단 한번도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성격이 차분하고 인성이 착했다는 게 동창들의 말이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들어간 뒤 회계사, 사시, 행시에 합격했다. 정치인 박찬종 씨와 닮은꼴이다. 졸업 뒤 잠시 부산지법 판사로 근무했는데 똑똑하고 유망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동료들은 의아해 했지만 보기 드물게 판사에서 검사로 전향했다. 홍준표, 김홍일 등과 함께 슬롯머신 사건 수사로 정·관계 유력인사 14명을 구속시키면서 '모래시계 검사'로 통했다.

2년간 변호사를 거친 뒤 정치에 입문했다.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 수석부대변인을 거쳤다. 국가청렴위, 부패방지위 위원에 이어 17대 대선 때부터 이명박 후보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BBK 사건이 대선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자 그는 대책팀장을 맡아 '방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여기까지는 인생 역정이 화려했다. 앞날도 탄탄대로였다. 뛰어난 기억력, 법과 회계에 대한 지식, 게다가 갖가지 경력까지 겸비됐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는 화룡점정. 선비가 갖춰야 할 요건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대부분을 구비한 셈이다. 외관이 수려하고 말과 글솜씨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데, 판단력에서 문제가 생겼다.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명이 된 그가 감사원 감사위원 자리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때부터 문제가 꼬였다. 감사원은 헌법적 독립기구로 국가의 최고 감찰기관이다. 그런 곳에 권력 측근이 들어서서야 되겠는가. 감사원의 독립성 훼손이란 점에서 헌법 위반이다. 법원의 판단은 다르겠지만 국민들의 법감정으로는 그렇다. 그러니 감사위원 자리를 덜컥 물어버린 자체가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4대강 감사 주심위원이 갑자기 그로 바뀐 데다 감사결과 늑장보고로 구설에 올랐다. '정권의 총알받이'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BBK 사건 방어는 변호인의 역할로 치부될 수 있다. 하나, 감사위원이 정권안보에 몸바치는 건 나라 망치는 짓이다. 이것만 해도 국가와 역사에 누를 끼쳤다. 한데, '물방울 다이아몬드'라니. 검찰은 억대 뇌물을 받고 부산저축은행 비리를 비호한 혐의로 그를 체포했다. 물론 죄의 유무는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 봐야 한다. 그렇긴 하되 그의 뇌물사건 연루 자체가 충격이다.

무엇이 그리 아쉬웠을까. 돈이라면 충분히 갖고 있다. 지난해 재산 신고액이 50억8054만 원. 갑부 중에서도 갑부다. 이만 하면 족할 텐데 검은돈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돈의 힘을 신봉했거나, 권력의 단맛에 마비됐거나 둘 중의 하나다. 누구나 부러워할 최고의 엘리트. 세상을 다 가진 그의 몰락은 이 시대의 병통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도 이러하니 장삼이사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대학교수가 아내의 재산을 차지하려 정부와 짜고 살인하는 세상, 그 놈의 돈 때문에 세상은 이렇게 미쳐 간다.

물론 이번 사건에 연루된 엘리트가 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만 30명에 이른다. 금감원은 아예 쑥대밭이다. 청와대 수석들과 의원, 여권 권력 핵심부의 친인척까지 거론되고 있다. 수사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으니 앞으로 놀랄 일이 또 많을 것이다. 그렇긴 하되 다른 모든 것보다 그의 침몰은 쓰리다. 그가 부산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사회의 초석이 되고, 나라의 기둥이 될 재목이 권력의 광풍과 돈바람에 날려갔기 때문이다. 그는 체포 직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어 진다"는 소회를 밝혔다. 개인과 가족사의 비극이다. 이는 또한 사회의 도덕성 상실의 표징이니 사회적 비극이라 해도 틀리진 않다.

서민들의 피눈물을 빨아먹은 권력 있는 자들, 그들은 파리떼에 다름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의 계단을 오른 이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뿐인가. 돈이 권력으로 향하는 계단이 되고, 권력이 돈을 긁어모으는 도구가 되는 세상. 그것은 온전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쯤에서 우리는 사회적 가치의 재건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돈의 무한 증식만을 추구하는 한국적 자본주의는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다. 세계는 국민 복지라는 수정 자본주의에서 이타적 환경 조성으로 동반발전하는 대안적 자본주의로 향하고 있다. 낡은 자본주의의 틀을 깨야 사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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