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일본 정부는 원전 반경 30㎞, 미국과 우리 정부는 80㎞ 밖으로 대피하라고 권고했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주변 주민들은 정부의 권고대로 피난행렬을 이뤘고 외국인들은 본국으로 떠났거나 가까운 한국으로 옮겼다. 만일, 고리원전의 비상사태로 대피령이 내려진다면 반경 30㎞는 부산진역~낙동강 일대~양산시내 전역~울산시를 포함한다. 반경 80㎞는 부산, 울산, 창원을 거쳐 창녕군, 함안군, 통영시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 쓰시마를 포함하는 인구 800만 명 이상의 거대지역이 된다.
정부 당국과 고리원전은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원전 제작과 원자력 안전기술의 발전, 뛰어난 원전운영 실적, 국제기구의 엄격한 안전성 평가, 지질학적 요인 등을 감안할 때 빈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내 원전의 안전성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고리원전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하면 원전에 근무하는 우리가 가장 먼저 죽는다"는 말로 안전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기 사장은 행적이 묘연하고, 열 받은 원자로를 향해 냉각수를 쏟아 붓는 작업에는 고임금의 원전 직원이 아니라 자위대와 소방대가 투입됐다. 이런 마당에 살아있는 자신의 죽음을 거론하며 원전의 안전성을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그렇다면 고리원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을 폐쇄하고 그 역할을 대체에너지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가 가동된 뒤 30년 이상 국가 경제산업발전에 기여했으니 이제 원전의 잠재적 위험이라는 짐을 내려놓을 때도 됐다. 프랑스는 원전도 없는 지중해 연안의 소피아 앙티폴리스를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첨단 과학기술도시로 만들었다. 동남권 중화학공업지역의 중간에 위치한 고리 지역을 국가가 책임지고 첨단 과학, 산업도시로 만들어주는 '통 큰 정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따른다. 해외에너지 의존도 96%, 에너지 수입액이 국가 총수입액의 28.2%인 911억 달러, 국가 전력량의 34%를 차지하는 원자력발전(2009년 기준)을 대신할 대체에너지를 현재의 기술, 재정 수준으로 찾을 수 없다.
원전을 지도에서 지울 수 없다면 차선책으로 원전의 안전망을 더욱 강화하고 원전지역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기술 중심지로 만드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X-선 발견에서 시작된 원자력 기술은 원자력 발전 분야 외에 비발전 분야로 확대되어 현재 의료, 소재, 에너지, 환경, 나노, 바이오 등 광범위한 산업분야에서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암 치료를 비롯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원자력 의학도 비발전 분야다. 발전 대 비발전의 비율은 미국이 25:75, 일본 45:55인 반면 한국은 90:10에 불과하다. 우리는 원자로만 열심히 만들어 온 것이다.
기장군은 고리원전 일대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기술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오래 전부터 노력해 왔다. 신고리 원전의 보상금을 받아 동남권원자력의학원 부지매입비 등으로 218억 원, 첨단암치료기인 중입자가속기 건립 250억 원, 수출용 연구형 원자로에 200억 원을 부담했다. 원전보상금을 모아서 정부 시설의 땅을 매입해 국가재산으로 되돌려 준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설 건립을 장기간 끌었고, 어떤 것은 원전도 없는 지역과 유치경쟁을 펴도록 했다. 한수원은 원전 담장 안에 숨어 3개 시설 유치 과정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고리원전은 관광특구 해운대에서 직선거리 20㎞, 반경 50㎞ 지역에 500만 인구가 사는 도시형 원전이다. 무려 8기나 되는 원자로가 밀집되어 있는 데도 원전 붐을 타고 2기 추가건립을 추진하더니 최근에는 덤으로 2기를 더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의 원전 증설은 무리다. 정부와 한수원은 수명 연장된 고리 1호기를 포함해 모든 원전의 운전기한을 최대한 지켜야 한다. 추가 예정부지에는 전기공급 시설 등 원전의 안전과 방사능 피해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이 들어서야 한다. 국내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기술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방안도 지역사회, 지역주민들과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