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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코뿔소에 대한 단상 /박형섭

지구촌 곳곳 독재붕괴 속 개인, 집단성vs인간성 간 딜레마에 빠질 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11 20:27:37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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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어느 소도시. 한가로운 일상적 삶의 정경이 펼쳐진다. 조용한 카페 테라스에서 두 친구가 대화 중이다. 베랑제와 장, 그들의 평화적 분위기는 있음직하지 않은 하나의 사건으로 일순간 파괴된다. 불현듯 카페 맞은편 보도에서 덩치 큰 코뿔소가 달려간다. 시내 중심가에 코뿔소가 출현한 것이다. 행인들이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진다. 혼돈 속에서 한 여자가 장바구니를 떨어뜨리고 고양이가 코뿔소에 밟혀 죽는다. 죽음이다! 다음 날 신문에 '후피동물에 짓밟혀 죽은 고양이'라는 기사가 뜬다. 거리에서 코뿔소를 직접 목격했거나 그렇지 않거나 대부분 코뿔소의 존재를 믿게 된다. 그런데 이 사태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각이나 태도가 가지각색이다. 이념적 성향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논리학자는 엉터리 추론을 펼치는 이념주의자이다. 경험론자(보타르)는 이성을 내세우며 확실성을 부정한다. 회의론자(뒤다르)는 판단하기에 앞서 상황을 이해하자고 주장한다.

그런데 코뿔소가 한 마리가 아닌 모양이다. 뿔이 하나인 코뿔소, 둘인 코뿔소, 인도산, 아프리카산, 아시아산…. 시간이 갈수록 그 숫자가 증가한다. 코뿔소로 인해 죽거나 다친 사람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오히려 코뿔소를 두려워하던 사람들이 하나씩 사건에 익숙해지고 현상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코뿔소에 우호적인 사람들까지 등장한다. 알고 보니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신한 것이다. 도시에 코뿔소 전염병이 돈다. 이 병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여지없이 코뿔소로 변한다. 베랑제의 사무실 동료도 친구도 애인도 코뿔소가 된다. 도시는 코뿔소와 인간이 동거하는 몽환적 공간이 된다. 코뿔소는 떼로 몰려다니며 말, 몸짓, 생각, 사랑의 행위조차 집단성을 보인다. 마침내 인간은 베랑제 한 사람만 남는다. 이제 최후의 인간 베랑제는 선택해야만 한다. 코뿔소의 무리에 합류할 것인가, 끝까지 저항할 것인가. 온통 야수들뿐인데 홀로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의 눈에 점차 인간의 몰골이 추해 보이기 시작한다. 고독하고 무섭다. 사랑하는 사람과 친구가 있는 세상으로 가고 싶다. 그는 자문하고, 중얼거리고, 외친다. "과연 내가 코뿔소가 될 수 있을까? 브르르…. 울음소리가 너무 약하다. 좀 더 거칠고 큰 소리로 브르르…. 이것이 코뿔소의 언어인가? 내가 코뿔소의 정신을 소유할 수 있을까. 아니, 아니다! 난 동물이 될 수 없어. 인간으로 남아야 해. 결코 항복하지 않을 거야!"

이것은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코뿔소' 이야기다. 이 작품은 억압의 사회(혹은 조직)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작가는 조국 루마니아에서 파시즘을 겪었다. 그는 이성과 합리주의의 승리를 믿었던 지식인과 소시민들이 기계적으로 파시스트에 가담하는 걸 목격했다. 코뿔소적 인간은 파시즘화 된 개인을 상징한다. 즉 사람들이 어떻게 죄의식 없이 파시스트로 변해 가는지 풍자한다. 집단의 맹목적 이성은 거대한 폭력이며 그 자체로 위협적이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권좌에서 쫓겨났다. 리비아의 카다피가 뒤를 잇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독재체제가 무너져간다. 해체된 권력의 빈자리에 어떤 지배 이데올로기가 들어설 것인가. 휴머니즘의 진정성이 결여된 속물적 지성은 또다른 형태의 파시즘에 봉사할 것이다. 그 지성은 권력을 지향하고 권력은 정당성을 위한 논리의 개발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여기서 개인이 야수로 변할 수 있음을, 모든 사람이 코뿔소를 수용하고 동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개인도 존재함을 희망적으로 증명한다. 인류의 역사는 그토록 참신해 보였던 혁명적 슬로건이 광신적 이데올로기로 타락하는 것을 무수히 경험했다. 집체적인 붉은 악마응원단, 광우병 촛불시위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베랑제와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독자성을 지키려는 사람의 외로움, 불안, 불행의 화신(化身)이다. 교조적인 영향력에 대한 입장 차이로 고통받는 개인의 비극은 인간 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념과 가치보다 현실적 대세에 편승하려는 욕망, 인간의 권력의지, 힘에 대한 동경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산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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