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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절대 밀지 마시오 /강영조

사용하기에 어려운·잘못된 디자인은 필요악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3-09 21:22:2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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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배드민턴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집 근처 체육관에서 시작한 것이 벌써 2년 가까이 됐다. 올 겨울 매서운 추위에도 배드민턴 레슨은 빠지지 않았다. 체육관 사무실 난로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가 레슨이 시작되면 밖으로 나와 수업을 받는 식으로 추위를 이겨냈다. 코치 선생님이 레슨을 시작하려는 분위기가 되어서야 얼른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고는 했다. 마지막까지 몸을 데우려는 생각에서였다.

근데 당겨 열어야 하는 유리문을 번번이 밀어 여는 바람에 문에서 그만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사무실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누구든 그 문을 밀고 나가려고 하다가 제지를 당하는 꼴이 되곤 했다. 자세히 보니 손잡이 부분에 '당기시오'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 문을 밀고 나가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문의 손잡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유리문 중앙 부분에 금속봉이 가로로 길게 U자를 그리며 부착되어 있었다. 손으로 잡으면 손등이 위로 향하도록 되어 있었다. 일반적으로 가로로 길게 부착된 금속 손잡이는 밀어내기 쉽도록, 세로로 부착된 손잡이는 끌어당기기 쉽게 보인다. 그래서 그 문을 나가려는 사람들은 몸으로 문을 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주의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문의 손잡이 형태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했던 것이다. 유려한 곡선과 반짝이는 스테인리스강 재료로 만들어진 손잡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디자인이 잘못된 것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형태적으로 아름다워야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사용하기 힘든 것은 아무리 그 형태가 아름다워도 좋은 제품이라고 할 수 없다. 나쁜 디자인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나쁜 디자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비디오 예약녹화기능을 가진 리모컨이 아닐까 한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멀리 떨어져 있는 비디오 녹화기를 제어한다는 그 리모컨은 유선형으로 날렵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정작 예약녹화를 하려고 치면 설명서를 펴들고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단추를 눌러야만 했다. 그러다가 뭐라도 하나 순서를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곤 해서 넌더리를 쳤던 기억이 있다. 이 리모컨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공대를 나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미려한 형태 때문이 아니다. 물론 애플 제품 특유의 미니멀한 디자인이 그 제품의 진가를 더해 주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용하기 쉽기 때문에 잘 팔리는 것이다. 아이팟과 아이폰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30분 정도면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손을 겨우 움직일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인터넷을 서핑하고,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고 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공간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야 좋은 도시다.

예를 들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보도의 경사, 재료, 폭, 녹음, 소리, 방향 표지판, 가로등의 밝기, 적당한 간격으로 마련된 쉼터 등 이동 행동에 관계되는 모든 요소들이 사용하기 쉽게 디자인 되어 있는 곳이라야 살기에 좋다. 거기에다 노약자나 장애인도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길 찾기 쉬운 도시,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 쉬운 도시, 누구나가 특별히 배우지 않고도 사용하기 쉬운 공공시설물이 설치된 도시, 하려고 하는 행동을 직관적으로 물 흐르듯이 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안전한 도시다. 다짜고짜 거대한 건축물로 랜드마크를 만들거나 미술관을 짓는다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 디자인 된 손잡이는 사무실뿐 아니라 체육관 입구의 문도 그랬다. 결국 일이 벌어졌다. 처음 체육관을 찾은 수강생이 문을 힘껏 밀다가 문 한쪽을 망가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 날 유리문에는 경고문이 붙었다.

'절대 밀지 마시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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