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 관광·교류 활성화 방안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항목이 있다. 바로 크루즈다. 2012년 여수 엑스포(세계박람회)와 부산의 연계 발전을 위해 부산시가 진행 중인 사업계획에도 부산~경남~전남 크루즈 운항이 포함돼 있다. 부산시는 여수 엑스포 기간(5월12일~8월12일) 정기 크루즈선을 띄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크루즈 배와 운영사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일 정기 카페리 선사 한 곳이 사업주체로 꼽히고 있지만 이 업체는 여력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현상은 세계 1위 조선국이자 해운강국인 한국에 아직 제대로 된 국적 크루즈선사가 하나도 없고, 정부의 크루즈산업 육성정책 역시 지지부진한 데 원인이 있다.
크루즈 운항은 한·일 연안 도시 간 공동 발전과 한·중·일 관광증진 등의 분야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부산 경남 등 한일해협 연안 8개 시·도·현 지사들은 지난 6일 부산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8개 지역 간 국제크루즈 노선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부산시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역내 관광진흥을 꾀한다는 좋은 취지이나 공허한 목소리로 들린다. 2008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8개 시·도·현 지사 회의에서도 크루즈관광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으나 그 이후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아서다. 같은 해 6월 부산에서 개최됐던 한·중·일 관광장관 회의 또한 마찬가지다. 3국 간 크루즈 상품을 늘리기로 뜻을 모았을뿐 실행이 뒤따르지 않아 선언적 의미라는 인상이 짙다.
'크루즈 승객 1명당 부가가치는 화물 컨테이너 1개를 처리할 때 발생하는 부가가치와 동일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연구 결과다. 그만큼 크루즈 관광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발표에 따르면 크루즈 관광은 전 세계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산업이다. 그래서 신성장 동력 또는 해양관광의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특히 승객 수가 1000명 안팎인 대형 크루즈선은 특급호텔과 거의 같은 숙박시설을 갖추고 여러 항구도시를 순회하기 때문에 고급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모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관광객 규모 면에서는 항공편보다 훨씬 더 크다. 이렇다 보니 국제크루즈선을 유치하기 위한 동북아 및 국내 주요 항만도시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다.
올해 여름 부산의 외국인 관광객 가운데 중국인이 일본인 관광객 수를 처음 추월한 것도 크루즈선 덕분이다. 한·중·일 크루즈선을 이용해 부산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예년보다 대폭 증가한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추세가 내년 이후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미국 이탈리아 등의 세계 메이저 선사들이 내년 부산항 기항(모항 포함) 횟수를 올해보다 대폭 줄이고 제주·인천 기항을 상향 조정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외국적 크루즈선사들의 기항지 선택요인 중 핵심은 승객들의 방문 선호도와 배후시장 규모 등이다. "이를 감안할 때 부산은 수도권을 낀 인천이나 중국인 승객들의 방문 선호도가 가장 높은 제주도에 밀려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이 국내 최대 크루즈 항만의 위상을 유지하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면 크루즈선 유치 역량을 한층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항에 비해 취약한 기항지 관광프로그램과 관광객 수용태세,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다시 찾고 싶을 정도로 감동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또 부산항이 진정한 모항 기능을 하려면 크루즈 배를 타고 들어오는 외국인에만 신경을 쓸 게 아니라 부산항을 통해 나가는 내외국인 승객에 대한 지원도 있어야 한다. 아울러 크루즈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향상과 크루즈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책이 필요하다. 앞으로 국제크루즈선의 뱃길에 '해양관광도시 부산'의 길과 미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