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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드라마 김수로와 다큐멘터리 가야사 /이영식

아무리 드라마지만 역사적 근간조차 각색해 버리면 설득력 잃을 수밖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9-12 20:08:09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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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역사를 소재로 한 최초의 드라마 김수로가 주말 안방극장의 전파를 타고 있다. '삼국시대'라는 역사인식과 용어에 밀려 우리 고대사에서 제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던 가야사가 대중적 시민권을 회복하게 되는 것 같아, 가야사를 전공해 왔던 사람으로서 여간 기쁘지 않고 기대 또한 작지 않았다. 그런데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제가 되는 일이 많은 것 같지도 않고, 가야사를 이야기하는 필자의 강연회에서조차 드라마의 내용이나 역사적 사실과의 차이 등을 묻는 질문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김해 김씨와 허씨 문중에서 역사와 다른 허구의 내용이 방송되었다 하여 서울남부지법에 방영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한다. 특정 문중이나 단체가 영화나 드라마를 상대로 송사를 벌이는 일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자기 조상이나 직업에 대한 존경심과 자긍심이 모욕당했다는 생각과 다른 시각이나 평가가 공존할 수 없다는 논리가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가끔 드라마의 끄트머리에 '이 드라마는 사실이 아닌 픽션입니다' 라는 자막을 흘려보내는 것 같이, 원래 드라마는 픽션이다. 역사드라마 역시 역사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역사교과서는 더 더욱 아니다. 김수로 역시 드라마이지 가야사의 다큐멘터리나 교과서가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머리에서 아무렇게나 만들어낸 허구 자체여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드라마 제작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가야사라는 역사적 소재에서 비롯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가 진행되었던 무대가 있고,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등장인물의 뒤를 있는 후손들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역사적 상상력과 드라마적 상상력이 다른 것이라 하더라도, 역사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상, 이미 확립되어 있는 역사와 역사 해석의 근본부터 부정해 갈 이유는 없다.

'대장장이 왕' 수로의 등장 이전부터 김해지역에서 청동기문화의 아홉 마을을 나누어 경영하던 아홉 촌장 중에 이미 야철장이 있었다는 상정이나, 처음부터 수로왕과 함께 등장해 있는 허왕후는 최초의 가야, 가락국의 건국을 탄생→성인→혼인→사망이라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통과의례에 맞추어 서술하려 했던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전개를 고의로 무시하는 것으로, 오히려 드라마 전개의 긴장감도 떨어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신라의 남해왕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수로왕이나, 기와지붕에 화려한 주색 칠 단청의 신라 왕궁과는 대조되게 억새지붕에 칠도 하지 않은 가락국의 건축물은 '삼국사기'가 신라왕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수로왕의 위상이나, 초기의 전쟁에서 신라보다 우위를 전하는 전쟁기사와는 정반대의 묘사들이다. 국민적인 관심을 끌었던 선덕여왕의 뒤를 잇는 드라마였기에 기대만큼 실망도 크다

드라마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는 캐스팅, 제작예산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우선 중요한 것은 원작이다. 혁명적으로 깜짝 놀랄만한 설정에 골몰한 나머지 역사적 사실로 확정되어 있는 기본적 줄기조차 무시하는 오류는 설득력을 잃게 한다. 선덕여왕과 김유신이 있고, 김춘추가 등장하고, 비담의 난이 있는 것처럼, 가락구촌사회, 수로왕의 등장, 석탈해의 도전과 극복, 허왕후의 도래, 가락국의 완성, 신라 백제와의 경쟁 등과 같은 가야사 흐름의 기본 줄기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선후관계의 확정 뒤에 사건과 사건의 인과관계라든지, 주인공의 캐릭터에 대한 재창조와 연결고리가 되는 등장인물의 창조, 역사기록이 다 전하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애증관계나 가야인의 정신세계에 대한 재해석과 창작은 얼마든지 좋을 것이다.

역사적 진리는 생명력과 함께 설득력을 가지는 법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정열을 기울여 탐구해왔던 가야사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이 작가 한 사람의 생각에 따라 뒤범벅되어서는 곤란하다. 드라마 김수로를 가야사의 역사적 사실로 오해하는 시청자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문자기록과 고고학 자료가 증명하는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조차 뒤범벅으로 만들어 버리는 작품은 더욱 곤란하다. 시청률도 낮고 흥미를 유발하지도 못하게 된 까닭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못한 허구를 위한 허구라는 잘못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제대 역사고고학과 교수·인제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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