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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천안함, 그 후폭풍을 우려한다 /이만열

대북 응징 대통령의 담화… 퇴로를 없애버린 '악수'는 아닐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5-25 20:50:4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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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던 날, 그것을 들으면서 대통령의 결단만 본 것이 아니다. 담화대로 남북 간의 교역 교류를 전면 중단하고, 북한 선박의 남쪽 해역 통과를 봉쇄하며, 확성기와 전단살포를 통한 심리전을 재개하겠다는 등의 여러 조치들이 의도대로 효과가 나든 나지 않든 대통령은 이제 '천안함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20년 넘게 남북화해와 교류를 위해 공들여온 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는 아쉬움과 함께 '늪'에 빠진 것 같다고 한 것은 '북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후속조치를 취하면서 스스로 퇴로를 차단해 재임 동안 그 '늪'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최정예 한미합동군사훈련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얕은 수심에서 '명중률 100%'를 과시한 '스텔스 잠수정'의 잔해가 쌍끌이 어선에 의해 포착되었다는 것은 발표대로라면 신출귀몰에 가까운 '완전 범죄'가 원시적 수단에 들통난 꼴이었다. 이를 보면서 전문가 70여 명이 밝혀 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 증거'도 이런 식으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렇게 되면 '천안함 늪'의 활동반경은 더욱 옹색해질 것이다.

합동조사단 발표를 계기로 전군 작전지휘관회의와 NSC는 '단호한 대응과 응징'을 발표했고 북측은 '날조극' 성명과 '검열단 파견 제의'로 답했다. "군사적·비군사적 조처로 북한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는 국방장관의 경고는 '현 사태를 전쟁국면'으로 간주하고 '무자비한 징벌'로 대응하겠다는 조평통의 엄포로 돌아왔다. 날 선 공방 속에 살기가 번득인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조국 통일에 대한 비전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대국민담화는 종래 대화와 타협에 의해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일거에 쓸어버리고 20여 년 전에 전개되던 남북대결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서울 불바다론' 이래 북측 협박에 어느 정도 면역된 국민이지만 담화에서 제시한 '선제관리'니 '즉각 자위권 발동'이니 하는 '적극적 억제' 정책에는 미더움이 가지 않는다. MB정권은 참여정부에서 일정까지 못박은 '전작권 환수'를 반납하겠다고 '비자주정책'을 추진해왔기 때문에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는 말이 도대체 아귀가 맞는 주장인지 헷갈린다. 대통령 담화의 내용이 많은 듯하지만 남북교역 중단을 제외한 대부분은 지금까지의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정도다. 전문가들의 지적과 같이 이것은 남측도 대북제재수단을 대부분 소진해버렸기에 뾰족한 정책이 나올 수 없다는 뜻이다.

북측 책임론을 분명히 한다고 해서 '안보실패'에 대한 내부 책임규명이 면제될 수 없다. 대북정책의 틀을 바꿀 정도의 '안보위기'였는데도 왜 책임지고 옷 벗었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는가. '안보위기'가 분명하다면 즉각 책임을 묻고 국민에게 안보의 엄중함을 보였어야 했다. 안보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책임은 묻지 않고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질타한들 그 진정성이 전달되겠는가. 국가안보만큼 신상필벌이 요구되는 곳은 없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옷을 벗어야 할 사람들은 적의 습격을 받은 패장들인 셈인데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말을 바꾸면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그것은 국민과 통치권 모두에 대한 수치다.

천안함의 후폭풍이 대북관계 못지않게 우리 내부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북을 향한 소리는 자기 내부를 향한 메시지다. 담화가 성동격서의 의미는 없을까. 북을 조이겠다는 것은 남쪽도 조이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안보제일주의만 내세운다면 더 노골적으로 민주적 가치를 무시할 수 있다. 경찰이 비상체제에 들어가고 행안부가 유언비어를 철저히 단속하겠다는 데서는 벌써 공안정국의 조짐마저 보인다.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곳곳에 허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 어떻게 조사단 발표 외에는 유언비어라고 몰아칠 수 있단 말인가. 대국민담화 시기 등으로 공명선거는 이미 생채기가 났는데 여당 수뇌부는 6·2지방선거를 안보 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그칠까. 여차하면 '4대 강 사업 반대운동' 등 선거 후에 들불처럼 일어날지도 모를 정책반대세력도 안보논리를 내세워 쓸어버리려 하지 않을까. 이제 민주주의를 위한 안보가 아니라 안보를 위한 이상한 민주주의가 강요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선택이 될 수 없다.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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