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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문화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이지양

고전은 창작 보고…정부, DB 지원 인색

문화산업 활성화는 양질의 DB구축 달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21 21:01:1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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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국회 예결위는 '한국고전 번역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위해 17억 원가량을 배정했다. 당초 신청액 66억 원에 비해 3분의 1로 축소된 것이다. 사극 드라마 한 편에 보통 100억 원 이상, 특집 다큐 한 편에 15억 원씩 쏟아붓는 것에 비하면 이 중요한 사업을 다큐 한 편 제작비 정도로 삭감 배정한 것은 유감이 없을 수 없다. 그래도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머잖아 국회에서도 재검토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대학에서 분과별 학문체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고, 그 결과 문화연구론이 대두되었다. 문화연구의 핵심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결별을 청산하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통합하는 인식체계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실을 응용해 인터넷 기술과 접목시킨 것이 바로 '문화콘텐츠'이다. 문화콘텐츠의 범주와 그 영향력은 아직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먼저 활성화되고 있지만 그것은 지극히 표피적인 일부 현상일 뿐이다. 20세기 산업사회 시장의 꽃이 증권이라면 21세기 지식정보사회 시장의 꽃은 문화콘텐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바로 그런 새로운 지적 흐름을 주도하는 문화연구와 새로운 생산물의 대표인 문화콘텐츠에 똑같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 폭넓은 지식저장고인데, 한국고전 번역 DB 구축은 그 지식저장고를 마련하는 사업인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그런 일을 단순히 옛날 책을 번역하는 일쯤으로 인식한다면 국가적 불행이 아닐까. 이 땅의 선조들이 20세기 이전까지 누적시켜온 지적 역량의 총체적 산물을 DB로 구축하는 시스템, 즉 우리 고유의 지식창고를 열어젖히는 일인데 그 중요성을 간과한 듯하다. '국역 조선왕조실록' DB가 배포되자, 그 중 한 구절에서 착안된 상상력이 '왕의 남자'라든가 '대장금'을 탄생시키는 모티프가 되지 않았던가.

'한국고전 번역 DB 구축' 이 지닐 생산력과 영향력을 감안할 때 다큐 한 편 제작비를 배정한 것은 일의 중요성을 과연 충분히 인식한 결정일지? 나라 살림에 돈이 급한 분야는 오죽 많을까 이해해보면서도 경쟁력의 근원적 뿌리를 소홀히 했다는 유감을 금할 수 없다. 문화연구나 문화콘텐츠산업을 키워갈 옥토는 양질의 DB이고, 양질의 DB야말로 지식정보사회를 일궈갈 생명의 샘이요, 보물창고인 것이다.

그 사업의 핵심 장점 두 가지를 제시해본다. 첫째,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양질의 정신적 자양분을 얻을 수 있다. 환경친화적 자연 개발의 문제, 윤리 도덕 문제, 생활 및 예술 풍속 문제, 국제적 문화교류 문제를 비롯, 광범위하고 다양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자유롭게 검색하여 사고력과 창의력의 바탕으로 삼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국의 이런 지식창고는 지금 우리의 정신과 심성을 가꾸는 좋은 거울이자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돈을 악착스레 벌어서 정신질환 치료비로 다 써야 할 지경이 아닌가.

둘째, 문화콘텐츠 사업의 질적 비약의 토대가 되어줄 것이다. 최근 TV에 방영된 다큐 '아마존의 눈물'은 제작진의 헌신적 수고를 통해 얻은 성과이다. 그러나 그토록 어렵사리 제작한 성과를 지구환경에 대한 일반적 각성을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만 것은 유감이다. 시간과 정보가 모두 부족했던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짚진 못한 것이다. 그건 그래도 이해해줄 여지가 많다. 일단은 '아마존'의 일이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우리의 역사, 우리의 조상, 이 땅의 현실에 관한 것일 때는 문제가 다르다. 무지는 곧 수치가 될 것이요, 타인의 불신을 부를 것이다. 언제까지나 역사를 소재로 한 퓨전드라마만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신뢰받을 수 있는 양질의 문화콘텐츠는 DB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첨단기술을 안받침해줄 문화콘텐츠의 파이프라인을 자국의 지적 전통에 묻어서 퍼올려야 하지 않을까. 자국의 무궁무진한 지식 정보 광맥을 개발해서 '한국고전 번역 DB' 로 정리한다는데 그 일을 축소시키거나 연기해서 좋을 일이 뭐 있겠는가. 문화선진국으로 도약할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에 이토록 인색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연세대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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