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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의 중립화 통일론 /이만열

축적한 힘과 외교력 바탕 중립화론, 주변국 설득 최적의 방안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2-03 21:06:20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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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 들고 난 뒤 한시도 잊지 않은 것이 통일 문제다. 기도할 때마다 빼놓지 않은 것도 민족의 하나됨이다. 그러나 고민의 오래됨에 비해 통일의 과정 등에 대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본 적은 없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열창은 해 왔지만 통일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나의 영역을 넘는 것으로 치부한 것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굳이 통일의 필요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는가 하면,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존이 강조되면서 상대적으로 통일의 열망도 식어가고 있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은 통일 문제를 다시 일깨워준다. '선제타격론'이니 '급변사태 대비계획'이 언론에 유출되면서 우리 정부가 과연 통일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또 가지고 있다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급변사태' 운운하지만 국제사회의 용인 없이 휴전선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닐까. 동족상잔의 경험으로 무력통일은 용납할 수 없고, 흡수통일은 배제되고 있다. 그렇다면 남북이 공유하고 국제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통일 방안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동안 한반도 통일론의 전개 과정은 복잡다기했다. 남측은 유엔 감시 하에 자유선거에 의한 통일론에서부터 무력(북진)통일론과 평화통일론, 한민족공동체통일론을 거쳐 국가연합통일론까지 나아갔다. 북측은 연방제통일론을 주장했지만, 그 또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두고 변화가 있었다. 남북이 합의한 통일론은 6·15공동선언에서 언급한 '남측의 연합제 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방안'을 조율하여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한다는 정도였다.

통일은 남북한 모든 계층의 확고하고도 일치된 견해만 있다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본다. 남북한 구성원이 한마음으로 통일을 하겠다는데 누가 방해하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거족적으로 일치된 견해가 없는 상황에서 외세의 영향은 분단 때와 마찬가지로 통일 과정에서도 필연적이다. 여기서 한국의 통일 방안은 남북한과 외세가 용인하는 최대공약수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남북의 일치된 견해가 없다면 외세의 영향력은 더 큰 변수로 작용한다. 6·25전쟁은 물론 그 뒤의 분단 고착화가 세계적 냉전질서의 산물이라는 점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언필칭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며 돕겠다고 했던 이웃들이었지만, 10년 전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을 때 보였던 반응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예민함이 상상 이상이었다. 그만큼 주변 강대국은 한반도의 추이에 민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과 주변국을 설득할 수 있는 차선의 통일론이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 조심스럽게 중립화통일론을 떠올릴 수 있다. 중립화통일론은 19세기 후반의 한반도중립화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는 일찍부터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마주치고 이해관계가 부딪친 곳이었다. 이 같은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중립화론은 한말 서세동점 시기에 한국이 국제질서 속에 편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임오군란 후 독일 외교관 부들러와 유길준이 중립화론을 제기했다. 노일전쟁 직전에 한국이 국외중립을 선언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 힘없는 중립화는 허수아비였다. 해방 후에도 알버트 웨드마이어 장군을 비롯하여 이승만의 고문 올리버, 미 국무장관 덜레스, 미 상원의원 노울랜드와 맨스필드 그리고 김용중, 최봉윤, 김삼규 및 통일사회당의 김철이 주장을 이어갔다.

해방 후 중립화론은 한반도의 통일론과 연결된다. 거듭 말하지만 통일에는 남북의 단합된 강한 의지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러면서 주변국의 적극적인 협조 또한 필수적이다. 중립화론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곳에서 힘과 외교력 없이는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동안 축적된 우리의 힘과 검증된 외교력은 중립화론을 시도해 볼 만하다. 중립화론은 상호이해를 조정할 여유공간이 필요한 주변제국에 대해 설득하고 동의를 끌어내는 최적의 방안일 뿐 아니라 남북의 이념과 체제를 조율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치지도외하지 말고, 우선 논의의 테이블에라도 올려놓아야 할 때가 아닐까.
※사외 필자의 견해는 본지의 제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숙명여대 명예교수·전 한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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