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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국왕의 신년 행사 /신명호

권농윤음에는 왕의 의지가 담겨… 올해는 희망의 윤음이 퍼지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01-13 19:58:1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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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실에는 삼명일(三名日)이 있었다. 세 가지 명절날이라는 뜻이었다. 정초, 동지 그리고 왕의 생일이 삼명일이었다. 정초와 동지는 한 해의 시작과 끝을 기념하는 명절이었다. 새해 소망을 기원하고 한 해를 마무리 짓기 위해 정초와 동지를 명절로 했다. 반면 왕의 생일은 군주제도에서의 주권자 생일을 기리기 위한 필요에서 명절이 되었다.

삼명일 중에서 정초에 가장 많은 행사가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가 특별했기 때문이었다. 정초에 국왕이 치르는 첫 번째 행사는 망궐례(望闕禮)였다. 새해를 맞아 중국 황제에게 인사를 드리는 예가 망궐례였다. 궁궐 정전 옥좌에 중국 황제를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올려놓고 국왕 이하 문무백관이 인사하는 예가 망궐례였다. 두 번째 행사는 왕세자와 백관들로부터 새해인사를 받는 것이었다. 왕세자와 백관은 정전 옥좌에 앉은 국왕을 향해 '만물이 모두 새로워지는 철을 맞아 삼가 전하께서도 큰 복을 받으소서'라는 인사말을 올렸다. 이에 대하여 국왕은 답례로 '신년을 맞는 경사를 경들과 더불어 즐기노라' 했다. 이어서 국왕은 내전으로 들어가 왕세자빈으로부터도 새해인사를 받았다. 새해인사가 끝나면 종친, 백관, 외국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잔치를 열었다. 이 회례연(會禮宴)에서는 술과 음악이 곁들여져 흥을 돋았다. 술처럼 또 음악처럼 군신상하가 서로 화합하고 즐기자는 의미의 잔치가 회례연이었다.

여기까지는 왕과 양반관료들만의 행사였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이 빠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례연 다음에는 국왕이 전국의 백성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 글은 보통 농업을 장려하는 글이기에 권농윤음(勸農綸音)이라고 했다. 정초에 국왕이 전국의 백성들과 어울리는 행사는 사실상 권농윤음 반포가 유일했다. 그런 의미에서 왕의 신년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다름 아닌 권농윤음 반포였다.

전통시대 한국의 왕과 중국의 황제가 백성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윤음이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윤(綸)이란 실로 꼰 줄이라는 뜻이니, 윤음이란 실로 꼰 줄과 같은 소리라는 뜻이 된다. 국왕이 전국의 백성들에게 당부하는 글은 몇 글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궁궐에서 반포된 윤음은 전국의 지방 관리들에 의해 백성들에게 다시 선포된다. 윤음을 들은 백성들은 서로서로 그것에 대해 의논하고 평가한다. 그 과정이 마치 실 뭉치에서 실을 뽑아내고 그 실을 꼬아 줄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해서 윤음이라고 하였다. 윤음은 달리 윤발(綸綍)이라고도 하였다. 발(綍)은 가는 실을 꼬아 만든 굵은 밧줄이므로 윤음이나 윤발은 결국 같은 의미이다.

실로 꼰 줄이 튼튼하게 제 역할을 하려면 실이 좋아야 하고 실이 좋으려면 실 뭉치 자체가 좋아야 한다. 만약 실 뭉치 자체가 부실하다면 실도 부실하고 그 실로 꼰 줄도 부실하게 된다. 그런 줄은 쓸데가 없다. 윤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윤음을 반포하는 국왕의 기본 정신과 현실 인식이 백성들의 마음을 울려야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었다.

조선은 농업을 기반으로 했다. 신년을 맞는 백성들의 최대 소망은 당연히 올 한 해 풍년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풍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성들은 열심히 농사지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백성들이 열심히 농사지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 여건은 국왕과 양반관료들이 마련할 수밖에 없다.

권농윤음에는 올 한 해 국왕이 농사지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된다. 그 의지가 현실에 맞고 또 백성들의 마음에 맞을 때 백성들은 희망을 갖고 생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백성들은 절망하게 된다. 국왕의 신년 윤음을 듣고 혹시라도 올 한 해의 풍년을 포기하는 백성이 있다면 그것은 그 가정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불행이기도 했다. 오늘날, 실 뭉치가 끈이 되고 그 끈이 다시 튼튼한 밧줄이 되어 전 국민을 희망의 밧줄로 묶을 만한 신년 권농윤음을 기대한다면 시대착오적인 일일까?

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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