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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냉소주의 시대의 인문학자 /이택광

요즘 인터넷세대 지식인·정치인에 혐오·기대 이중태도

지식인의 몫은 이들과 소통하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1-04 20:44:10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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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종언이라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운위되었지만, 한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서구에서 출현했던 그 근대적 지식인의 종언이라는 문제의식과 사뭇 다른 것이다. 한국에서 지식인의 종언은 인터넷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인터넷 글쓰기의 출현은 '글 쓰는 존재'로서 권위를 부여받았던 지식인의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든 측면이 강하다.

조금 복잡하게 말하자면, 지금 '생각하는 주체들'은 인터넷이라는 사유기계를 통해 사유하는 인터넷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세대, 특히 사회과학적 개념훈련을 통해 세계관을 획득했던 386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대이다. 인터넷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책을 찾아보는 세대이지 책을 통해 인터넷에 들어오는 세대가 아닌 것이다. 책을 통해 공부하고 관념세계를 만든 다음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세대와 다른 세계관을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학습하고 자기의 세계관을 정립하는, 완전히 다른 세대들이 나타난 셈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 인터넷 세대와 이전 세대가 글을 독해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사유가 다르니 당연히 독해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인터넷 세대는 문어체의 글을 잘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충돌들이 일어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 때문에 오히려 사유의 계기들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런 차이를 인터넷 세대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

글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대체로 사전지식체계에 글의 내용이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택할 수 있는 방식은 사전을 찾아보거나 아니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다중매체는 과거에 불가능했던 이런 쌍방향 소통에 유리한 조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터넷 때문에 읽고 쓰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은 적절한 현상 진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문제는 독해 방식의 차이라기보다, 글에 대한 냉소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더 흔한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냉소는 다분히 글이나 그 글을 쓰는 지식인에게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까지도 포괄하는 경향성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생존의 공포를 통해 체화된 측면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내용이야 어떠하든, 절차적인 차원에서 한국의 정치는 좌·우파의 권력교체를 경험했다. 그 이전까지 민주화운동세력의 기본적인 정치의제는 바로 정권을 평화롭게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평화로운 정권교체 이후 어떤 내용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지향이 무엇인가, 이념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들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 내용들은 고스란히 과거의 습속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과 다른 괴리들을 노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들, 특히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새로운 세대의 대중들은 정치인과 지식인 전반에 대한 냉소주의를 체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현실사회주의를 체험한 동유럽인들이 보여주는 것과 비슷한 냉소주의를 한국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들은 지난 10년을 거치면서 너무 많은 진실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은 정치인과 지식인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이들로부터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모순적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냉소주의가 만들어낸 현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대중들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존재할 수 없지만, 존재하고 있는 이상한 공간이다. 공간만이 남아 있고,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마땅한 이 모순의 조건에서 지식인의 글쓰기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결국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앎을 넘어선 앎, 또는 계몽에 대한 재계몽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21세기 한국에서 인문학자가 할 일이 있다면 이런 냉소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고군분투일 것이다.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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