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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시간은 돈이 아니다 /김재기

시간 절약할수록 더 힘들고 불행해

삶은 과정일 뿐 희생하는 경주 아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10-28 20:25:2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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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문명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상하게도 늘 숨가쁜 하루하루를 보낸다.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신적인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바쁘다, 바빠!"로 대표되는 '시간부족증후군'은 현대인들에게 가장 흔한 질병, 그것도 거의 불치병에 가까운 괴질이지만, 유난히 조급증에 시달리고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회 를 옥죄고 있는 한국에서는 그 폐해가 더 심각한 편이다.

엄청나게 발달한 과학기술과 갖가지 문명의 이기(利器)들 덕택에 우리는 옛날사람들이라면 상상도 못할 만큼 시간을 '절약'하며 사는데도 왜 이리 바쁘고, 왜 이리 늘 시간에 쫓기는 걸까? 어떤 이들은 그 이유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보다 늘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맞는 말이다. 문명의 발달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고 다 가질 수 있다는 탐욕과 환상을 부풀렸고,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무한경쟁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늘 '조금 더 열심히' 살 것을 강요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원인은 좀 더 근본적인 데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보기엔 시간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 자체가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돈"이라는 구호야말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 또한 돈처럼 절약할 수 있고(아니, 절약해야 하고!) 돈처럼 축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을 아껴 쓰고 모으면 부자가 될 수 있듯이, 시간도 열심히 허리띠 졸라매고 절약해야 할 대상, 아끼고 축적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의 산출'을 얻는 게 경제활동의 목표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리석게도 우리 삶 전체를, 시간의 흐름 전체를 그런 시각에서 재단하고 있다.

그러나 무한축적과 무한증식이 가능한 돈의 세계와는 달리,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적 시간의 세계에서는 축적도 증식도 불가능하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은 '절약'할 수 있는 재화(財貨)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절약'한 시간을 돈처럼 금고 안에 쌓아두었다가 꺼내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한축적과 무한증식이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사회, 돈을 버는 유일한 이유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인 사회에서는, 우리가 설사 시간을 '절약'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행복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절약된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곳에, 다시 말해 축적과 증식을 위해 필요한 곳에 다시 '투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간을 절약하면 절약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 바빠지고 바빠진 만큼 힘들고 불행해진다. "시간을 절약하면 할수록 우린 그것을 더 조금 갖게 된다"는 모모(Momo)의 통찰이 새삼 머리를 때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가 뭘 하든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물리적으로만 보면 모두에게 하루는 24시간이며, 이만큼 공평한 진실도 없다. 이렇게 주어진 모든 시간 자체가 우리의 삶인데, 우리는 언제나 그 시간 밖에서 삶의 목표를 찾고 행복을 찾아 헤맨다. 물론 촌음(寸陰)도 아껴 쓰며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이만큼이나마 먹고 사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단기적인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는 기본패턴이 된다면 큰 문제다. 현대인들은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의 시간을 절약하고 저축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궁극의 행복'이라는 걸 맛보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가 달리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리 변하면서 끝없이 새로운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가 바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삶은 과정이다. 종착역에 있는 단 하나의 궁극목표를 위해 전 과정을 희생해야 하는 경주가 아닌 것이다. 평생 동안 자신의 삶 자체를 절약하고 저축하고 저당 잡히면서, 마치 시간 잡아먹는 괴물이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만 보며 내달리는 삶이 좋은 삶일 수는 없다. 너무 유명해져서 이젠 오히려 진부한 경구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붙잡아라)'이 새삼 절실한 세상이다.

경성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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