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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누가 토착비리를 키우나 /권순익

부정부패의 반복 뿌리 못 뽑는 건 살아있는 권력에 손 못 대는 풍토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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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성 전 울산경찰청장이 얼마 전 뇌물수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최종 직책이 충북경찰청장이었으나 제복을 입은 기간의 대부분을 부산에서 보낸 그다. 평범한 지방 경찰관이었지만 갑자기 '가도'를 달리더니 정권이 바뀌면서 영어의 몸이 됐다. 기자가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도 전에 유·무죄를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지난 정부에서 한창 피어날 때의 기세는 안다. 14개나 되는 부산지역 경찰서 중 1개 경찰서장이었을 때도 부산경찰청장이 그의 눈치를 봤다. 경찰청과 검찰청 등의 홈페이지에 그의 비리 의혹을 적시하는 글이 올랐지만 어느 기관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부하가 성폭행 피해자를 성폭행하는 엽기를 저질렀을 때도 그는 영전했다. 당시 부산 출신 정권실세들과 그 사이에 떠돌던 유다른 친분설을 이후로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피는 꽃이 질 때를 알겠는가. 이춘성 씨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한창 잘나갈 때 경찰이든, 검찰이든 경고음을 울렸다면 그가 구속되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의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는 대부분 그때 이뤄진 일들이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 회장의 구속으로 시작된 '삼부파이낸스(주) 사태'는 IMF 충격으로 휘청거리던 부산을 패닉상태로 만들었다. 회장인 양재혁 씨가 빼돌린 고객투자금 규모가 1116억 원이나 됐고 직접적인 피해자만도 1만 명이 넘었다.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부산경찰청 국정감사에 나섰던 강삼재 의원은 "양 씨가 검찰에 구속되기 전에 부산경찰청이 이미 불법영업 내사자료를 이첩받고도 묵살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전인 문민정부하에서도 비정상적인 영업행태에 대한 의혹과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됐다. 단지 검찰이나 경찰이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부산지검은 "정권이 바뀌면 손봐야할 " 대상으로 삼부파이낸스를 지목하기도 했다. 검찰은 과연 정권이 바뀌자 칼을 뺐다. 그것도 지검이 아닌 대검 중수부가 장검을 뺐다. 그러나 대부분 영세상인이던 삼부파이낸스의 투자자들은 이미 '등골이 빠진 뒤'였다.

'토착비리'란 말이 있다. '토호(土豪)'란 말도 있다. 지방으로선 모멸감을 느낄만한 표현들이다. 지방을 무슨 추장들이 지배하는 미개지 정도로 여기는 중앙의 오만한 시선이 담겨있다. 역대 정권이 정권 초기면 들고 나오는 '토착비리 척결' 구호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지방에서 일어나는 비리를 모아두었다가 때가 되면 한 번씩 손본다는 뜻이다. 말이 뜻밖의 진실을 드러내는 때가 이런 경우다. 비리가 있으면 그때그때 처리하면 그만이다. '강도 척결' '도둑 척결' '사기꾼 척결'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따지고보면 토착비리라며 발표하지만 대부분 중앙과 연계된 사건들이다. 잘나가는 권력이 지역비리의 숙주가 되거나, 지역이 권력비리의 숙주가 되면서 부패를 키우는 게 토착비리이다. 재작년 지역건설업자 김상진 씨 로비사건에 얽혔던 이들을 보라. 전 부산시장의 인척이나 부산관광개발 전 대표가 수십억 원대의 로비 약정을 맺은 스캔들의 연못엔 정윤재 전 청와대비서관과 전군표 국세청장도 몸을 담그고 있었다. 김해의 실업가였던 박연차를 정권 차원 스캔들의 주역으로 만든 건, 중앙인사들이었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권력형비리와 토착비리 근절 의사를 밝힌 지 한 달이 훨씬 지났다. 부산경찰청은 별도의 팀을 만들어 비리 첩보 수집에 들어갔다고 하고 검찰도 분주히 움직인다고 한다. 덩달아 지역사회의 긴장감도 높아지는 모양이다. 검·경에게는 토착비리 수사란 게 '계륵'같은 점이 있다. 결과가 시원찮으면 "괜히 지역사회를 들쑤셔 놓았다"고 핀잔 듣기 십상이다. 고삐를 바짝 죄면 "지역의 씨를 말릴 셈이냐"는 누구의 의견인지도 모르는 여론이 나돈다. 그 뒷전에서는 누군가가 조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검·경이 이런저런 시비에서 떠나 수사의 정당성을 얻는 법은 한 가지뿐이다. 빛바랜 권력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 '생성 중인 권력'까지 파헤치는 것이다. 그건 토착비리 수사가 토착으로 끝나지 않으면 된다. 문어다리 한두 개쯤 잘라놓고 '몸통은 다음 기회로' 미루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때를 보며' 미루는 손도 토착비리를 키우는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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