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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주올레의 여섯 가지 미덕과 한 가지 소망 /이지양

평화·주민·자발성 등 올레의 미덕

정신의 소중함은 새로운 희망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09-08-25 21:34:47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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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좁은 마을 길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큰 길과 집, 우리 마을과 이웃 마을, 집과 일터를 이어주는 좁고 긴 골목길을 총괄하여, '제주올레'라는 브랜드로 개척한 것은 2007년부터라 한다. 길은 제주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생겨났겠지만, 그 길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이어 지금처럼 누구나 따라 걸을 수 있도록 표시하고, 안전하게 다니도록 관리하고 다듬어 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한 것이 그때부터인 셈이다. 길이 운명이라 했던가. 제주는 정말 그 길 덕분에 도시의 운명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았다. 유흥과 소비 중심의 관광도시에서 삶의 고뇌를 나누는 여행지로 말이다. 마치 제주 전체가 성형 미인에서 자연 미인으로 바뀐 듯했다.

전국 곳곳에서도 '걷기 좋은 길'을 조성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들은 올레 길의 성공 비결이랄까, 의미를 매우 꼼꼼하게 짚어야 할 것이다. 길이란 출발점에 아주 미세한 차이만 있어도 완전히 다른 길이 되어버리는 데다, 사람이 다니는 동안에는 언뜻 길을 이루었다가 잠시만 다니지 않으면 띠 풀이 꽉 차게 되는 것이 속성이니까. 그래서 길이란 처음에 닦아 놓았다고 길이 아니며, 일시적으로 주목받았다고 길이 아니다. 길이야말로 여러 사람에 의해 긴긴 세월동안 만들어지고 가꾸어지고 지켜지는 오묘한 무엇이다. 그러니 길이 길답게 되는 경로를 매우 잘 살펴야 할 것이다.

제주올레에서 그 길이 지닌 여섯 가지 미덕과, 한 가지 희망을 발견했다. 첫째, 올레 길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야심과 무관하며, 100% 평화와 치유에 대한 열망과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둘째, 지자체 기관들의 성과주의나 업적주의, 그리고 행정 편의에 의한 탁상공론으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라, 제주민의 삶이 만들어낸 길이기에 그 길에 주민이 주인답게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다는 점. 셋째, 아이디어의 출발은 서명숙 이사장이지만, 그 이후 실천과정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계층과 입장과 권위의식을 넘어 한마음으로 동참했으며 지금도 열혈 자원봉사 올레지기들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 넷째, 올레 길 외딴 구석 바람 거센 곳도 예외 없이 일터이건만, 힘겨운 일터 곁으로 외지의 도보 여행객이 지날 때 일하는 주민 누구 한 사람도 배타적으로 째려보지 않았다는 점. 자신은 일하고 있는데, 니들은 팔자 좋게 고생을 사서 돌아다닌다고 입을 삐죽대기는커녕, 물을 나눠주고, 미숫가루를 타준다는 점이다. 다섯째, 상점이 없어서 아름답게 불편하다는 점이다. 길을 걷는 사람이 자기 배낭에 지고 간 것이 아니면 돈이 있다 해서 쉽게 구하거나 살 수 있는 것이 없다. 매우 고귀한 결핍이 있는 길이었다. 그래서 그 길을 걷는 동안은 누구나 진정으로 평등해진다는 점. 여섯째, 쥐구멍에 볕이 들게 했다는 점. 올레 길이 생긴 곳에 민박을 받으면서 모자가 부둥켜안고 '이제 살았다'고 울었다는 얘길 들었다. 놀이기구도, 술집도, 도박장도, 화려한 네온사인도 없고, 특권층과 줄이 닿아야 할 이유라고는 없는 그야말로 시골구석에 사람이 일부러 찾아오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오감으로 걷는 길, 치유와 이해와 평화와 연대를 이루는 길이라는 무수한 장점들이 있다. 이런 장점은 관광수입이나 육체적 강건함에만 의미를 두고 여기저기 길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다시금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제주올레를 한 코스라도 걸어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소망이랄까 목표를 만났을 것이다. 심리와 정신을 물질만큼만 소중히 하면서 살 수 있기를, 나와 타인을 큰 온도 차이 없이 대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같은 것 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얼마나 불안정함에 시달리고 있는가. 그것은 남녀노소 없이 전체적으로 통계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고, 생활 속의 사건사고의 내용으로도 드러난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정신건강, 심리건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때인 것 같다.

타고난 심성과 개성에 상처를 덜 내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사람 사이의 예절과 믿음과 도덕, 친절이 우리 삶을 얼마나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가게 만드는가. 올레 길을 걷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런 점에서 그 자체로 희망을 가지게 한다.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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