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롭게 차려입은 귀부인이 TV화면에 나타난다. 그녀의 우아한 손에는 값비싼 크리스털 술잔이 들려 있다. 술잔을 가득 채운 샴페인이 넘쳐흐른다. 떨어지는 몇 방울 술을 가난한 실업자가 받아 마신다. 이어서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것은 옳지 않다. 공화당이 하는 일이 저렇다."'('한국의 시장경제-보수와 진보'(임석규) 중)
1980년대 미국 민주당이 만든 TV 캠페인 광고의 한 장면이다. 공화당이 내세우는 하방침투효과(trickle-down effect)의 허구성을 희화적으로 폭로하는 내용이다. 하방침투효과란 시장만능주의자(신자유주의자)의 주장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처음에는 부유층이 혜택을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하위층도 성장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미국에서는 이의 허구성 논란이 뜨거웠던 모양이다.
이것은 수십년 전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다. 바로 지금 한국에서 하방침투효과의 유효성과 허구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거의 모든 정책은 하방침투효과에 기반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이다. 지방의 공동화(空洞化)가 가속될 거라며 비수도권에서 거세게 반발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을 발전시켜 그 이익금을 지방에 흘러들어가도록 하겠다." 이 발언을 들은 비수도권은 "지방은 수도권의 떡고물이나 받아 먹으란 말이냐"며 격앙했다. 대통령의 하방침투효과 주장은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한 것이다.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밀어붙인 부자감세와 복지축소 정책도 마찬가지다. 부자와 기업가의 투자를 이끌어낸다며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등록세 상속세 등을 대폭 줄여준 것이다. 물론 투자가 확대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 시간이 다소 걸리긴 해도 저소득층에까지 온기가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수백조 원의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방침투효과의 허구성은 원산지인 미국에서 이미 입증됐다. 레이거노믹스로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에 양극화와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지난 10년간 미국 기업들의 이윤은 75% 늘어난 반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 깎였다. 하방침투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심장인 미국 월스트리트는 마침내 글로벌 경기침체의 진원지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은 종언을 고할 때가 된 것이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폐기를 선언했다. 오바마가 미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은 부자감세가 아닌 부자증세와 복지강화로 요약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이미 실패한, 30여 년 전의 미국식 경제운용방법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경제위기 대응책에서도 하방침투효과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녹색뉴딜이다. 정부는 4대 강 정비를 비롯해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고용을 늘리고 침체된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하지만 대공황을 극복한 뉴딜정책의 핵심은 토목공사가 아니라 광범위한 금융규제와 노동자의 권익보호, 사회안전망 확충 등 경제약자 보호와 배려이다.
하지만 우린 어떤가. 경제위기 상황임을 내세워 전쟁을 치르듯 통과시키려는 법안들의 내용을 보자. 재벌기업들이 부르짖는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원조 뉴딜정책의 이념과 배치되는 내용들이다. 하방침투효과를 맹신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1% 정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쏟아내는 정책들이 대부분 그렇다.
얼마 전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은 이 같은 정부의 경제위기 대응책에 우려를 나타내며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특히 맹목적인 시장만능주의를 버리고 사회통합을 위해 경제약자를 배려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는 귀를 막고 있다. 출범 1년을 맞은 이명박 정부의 일성은 "기존 정책을 흔들림없이 추진한다" 였다. 하방침투효과가 이미 관 속에 들어간 상황에서 친대기업, 친부자 정책은 '빈익빈 부익부'란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이것은 옳지 않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이 다 이모양이다.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