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승리 1주년을 맞은 청와대가 차분하다고 한다. 경제성적표가 좋지 않은 탓이다. 최근 한 경제신문이 증권·자산운용업계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명박 정부의 종합성적은 '미'와 '양'의 중간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절실한 분배와 복지 관련 정책 점수가 매우 낮았고, 경제팀의 평가는 '문제아' 수준이다. '경제만은 살리겠다'고 공언한 정부의 성적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미국발 금융위기 등 대외환경을 반영한 평가가 이렇다. '당선만 되면 주가 3000 간다'는 후보시절 호언과 '747'정책 등 출범초기에 불어넣은 기대치를 감안하면 참담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의 체감 성적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0선을 오르내리던 주가가 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입맛을 잃은 직장인들이 수두룩할 정도이니 긴말이 필요없을 듯하다.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 아래로 추락했다. 미래는 더 암담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직접적인 이유는 대외환경 악화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 정부의 운 없음을 동정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최악의 경제성적을 대외환경 탓만 한다면 이를 너그럽게 보아줄 국민은 많지 않다. 최근 한승수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경제성적이 좋지 않다"고 자평했다. 여기에 '국제금융위기 때문'이라는 단서를 다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또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성장잠재력이 반토막났기 때문이라며 전 정부 탓도 했다. 오늘의 경제상황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고 남 탓만 하는 사람들에게서 믿음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내일이 더 두려울 수밖에.
이명박 정부의 신뢰의 위기, 위기의 리더십에 큰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할 따름이다. 경제가 변화의 흐름을 좌우한다는 믿음은 이제 바뀌고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갈파했듯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정치다. 경제상황은 상당부분 정치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왜 정치인가. 크루그먼의 진단은 명쾌하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로 정치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정치와 그 정치에 기반한 정책은 국민들의 경제적 지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회적 믿음은 경제적 평등에 기반한다. 불평등을 조장하는 정치와 정책은 결국 신뢰의 기반을 허문다는 크루그먼의 통찰은 공감을 사고 남는다.
크루그먼의 정치경제론을 좌파·진보주의자의 낡은 주장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미국의 금융위기에서 촉발된 작금의 글로벌경제침체가 극명한 사례다. 자본주의의 승리를 호언한 프란스시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유보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크루그먼의 노벨상 수상은 이런 주장에 대한 응답이다.
크루그먼과 경제노선을 같이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부상도 마찬가지다. 오바마는 타임지(誌)에 의해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매우 어려운 시기에 미국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다는 평가다. 특히 그는 전문성과 능력 등 재능을 갖춘 인사들을 두루 적극 기용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부족한 경험을 보완해나갔다고 지적했다. 희망의 원천은 바로 통합의 리더십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임을 말하고 있다. '진보적 목표를 보수적으로 표현하는' 오바마 특유의 정치스타일은 미국의 보수와 진보를 융합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현실은 어떤가. 정권교체 이후 통합과 불평등 해소보다는 독단과 양극화 심화를 부채질하는 쪽으로 질주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 '부자감세'가 국민통합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지적을 콧방귀로 대꾸하지 않았는가.
중용과 절제라는 전통 보수의 목표와 가치는 진보적 시각을 포용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시장자본주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정책적으로 보완할 때 더욱 발전하고 풍요로워진다. 지금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는 더욱 서민들을 보듬는 정책을 내놔야 신뢰를 얻고 경제난 극복에의 희망을 줄 수 있다.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사람을 믿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크루그먼의 말을 새겨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