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부동산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과정에서 쟁점사안 모두에 '합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낸 김종대 재판관은 유일한 향판(鄕判) 출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다. 판사생활의 거의 전부를 부산 경남에서 보낸 그는 부산지법 제1형사부 부장판사이던 1996년 병원에서 선고를 내렸다. 위암과 간파열 등 합병증의 악화로 가족들이 영정까지 준비한 40대 운전기사를 위해 재판부가 병원으로 간 것이다. 운전기사는 교통사고 과실에 대해 무죄선고를 받은 직후 숨졌다. 선고를 늦출 수도 있었으나 죽기 전에 피고인의 누명을 벗겨주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유례없는 병원 출장재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짙은 눈썹에 무인형인 김 재판관은 적극적인 재판진행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역시 부산 경남의 향판 출신인 조무제 전 대법관은 학처럼 꼿꼿한 자세로 재판을 이끌어갔다. 재판당사자의 의견을 최대한 경청하면서도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 재판에 진 쪽이 진심으로 고마워한 일도 있다. 그는 외부인이 찾아오면 문간에 선 채로 정중하게 응대해 청탁자체를 불가능하게 했다. 조 전 대법관의 후배 판사들은 "조 법관의 청렴함이 너무 알려져 오히려 그 뛰어난 실력이 덜 알려졌다"며 불만(?)스러워하곤 했다.
부산고법이 판사들의 재판진행을 관찰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대부분 판사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듣기 어렵거나 준비서면도 읽지 않고 나온 판사도 있었다고 한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재판당사자들은 판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온 신경을 쏟게 마련이다. 당사자의 승복을 이끌어내는 데는 명문의 판결문보다 절제되고 합리적인 재판진행이 더 필요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일은 무섭고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