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 집엔 번개라는 개가 있었다. 번개는 어린 나보다도 작았지만,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시장에서 집까지도 찾아올 뿐만 아니라(나도 혼자서는 돌아올 수 없는!), 저녁엔 낯선 이나 귀신으로부터 우리가족을 지켜줬다. 번개는 나보다 작았지만 나보다 어리거나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번개가 새끼를 낳았을 땐, 그 당시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능력, 그러니까 생명을 세상에 뱉어 내는 어머니이기도 했다. 그 새끼들은 또 나보다 훌쩍 자라서 번개와 나란히 동네를 천천히 산책하곤 했다. 그 모습이 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고 어느 날은 번개가 낳은 새끼 중에 온몸이 까만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 내게 달라했지만, 내가 유치원에 간 사이에 산 너머 이웃동네로 보내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이틀 밤을 울어서 겨우 그 까만 아이를 찾으러 이웃마을로 갔는데, 쥐약을 먹고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돌아오는 내내 할머니를 원망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바로 자취를 시작했다. 명절 날 집에 가니 주먹만한 강아지가 있었는데, 젖을 막 뗀 큰이모네 강아지가 발등으로 엎어지는게 너무 이뻐서 어머니가 들고 오셨다고 했다. 나는 냉큼 집어 왔다. 번개의 까만 아이에게 붙여 주고 싶던,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나를 부르던 '깜상'이란 이름을 붙이고 사고로 죽기 전까지 오년을 살았다. 나는 대학 내내 야학을 했고 귀가 시간이 새벽 한 두시를 훌쩍 넘기기 예사였다. 하지만 깜상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내가 살던 동네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했다. 룸메이트가 같이 살면서 깜상은 우리의 개가 되었고, 내 성실하고 믿음직한 룸메이트는 내가 없던 기간에 깜상을 돌봐주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오년을 언제나 그리워한다. 나의 집엔 언제나 친한 친구와 나의 개가 있었고 그 균형은 너무 충만한 것이라서 불안정함이라곤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때 자신이 있었다. 깜상을 죽을 때까지 지켜줄 자신도, 한 가족의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깜상과 오년을 살았던 자취방은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던 자취촌인데, 내 이층방 큰 창 옆으로 나무가 있었고 지붕이 있었고 산이 있었다. 뜬금없이 깜상이 짖을 때 창을 보면 길고양이들이 지나가고 있거나 나무에서 우릴 보고 있곤 했다. 깜상이 죽고 친구가 결혼으로 떠난 그 자취방에서 보내는 기간이 많아졌다. 하루는 누가 나랑 베개를 나눠 쓰고 있기에 눈을 떴더니 천연덕스러운 고양이 한 마리가 볕이 좋은지 그러고 내 볼에 궁둥이를 붙이고 있었다. 내가 개를 키울 때 보던 고양이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였다. 가고싶은 곳엔 가고 떠나고 싶을 땐 미련이 없었다.
깜상이 사고로 죽은 이후엔 짐승을 자의로 키우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러나 자취방에서 맨션의 넓은 반지하 작업실로 이사를 하니, 친구들이 길에서 주운 새끼 고양이나 키우다가 건사하기 힘들어진 고양이들을 놓고 갔다. 개는 나에게 벅찬 존재여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고양이는 괜찮았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외로워하지 않으며, 어느 정도 완전히 집고양이로 길들이지 않으면 독립해서 떠나곤 했으니까.
사무실을 내고 산 밑에서 도시로 옮기면서는, 고양이가 더 이상 독립적인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됐고 그맘때 누가 강아지를 한 마리 주워왔다. 7살 먹은 우리 보동이는 그렇게 내게 왔다. 도시에서의 짐승이 살아야 하는 법에 대해, 야생을 놓아버리고 사람과 함께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이제 정말 알아야 할 때였다. 전용사료를 주고 불임수술을 해주었다. 개는 혼자 놔두면 우울증에 걸리니까 산책도 시켜주어야 했다. 그리고 도시고양이들의 삶은 너무나 비참해서 고양이들의 외출을 막았다.
한 마리의 개와 다섯 고양이랑 살고 있다고 하면,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는 개와 고양이도 한집에 살면 가족이 된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와 인간이 함께 살 때는 인간이 그들을 보호해주고 책임져야 된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이기 전에 그 애들은 나에게 균형감각을 주고 존재의 이유와 위안을 주며 본능과 적응을 알려준다. 나는 매번 개와 고양이에 관한 편견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우리는 본능을 따라야 하는 거니? 아님 적응을 해야 하는 거니?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이 있는 거니? 기다리는 동안에도 나를 생각하니? 어떻게 해주면 좋겠니? 그리고 죽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내 옆에 있어줄 수 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