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애초 다루려 한 칼럼 내용은 최근 또다시 불거진 신한일어업협정과 독도에 관한 문제였다. 10년 전 협정 발효 당시 그 현장의 중심에서 취재를 한 바 있어 독도 영유권 훼손 여부를 따질 생각이었다. 대략 구상까지 끝냈으나 그게 뒤에 바뀌었다. 바로 올림픽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박태환이 자유형 200m에서 2위를 한 후다. 자신은 아직 갓난아기라며 경쟁자인 펠프스와의 실력 차를 직시하고, 격차를 좁히려는 투혼이 금보다 더한 감동으로 기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번 수영 자유형의 금,은은 아시아의 반란으로 여겨질 만한 놀라운 땀의 결실이다. 비단 박태환뿐이겠는가. 베이징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대한건아 모두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언제쯤 금메달이…"하던 조바심도 이젠 사라져 하루하루가 기다려진다.
그런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새삼 마음이 이끌리는 데가 있다. 바로 그들을 키운 아버지 어머니이다. 지금 이 순간 자녀를 둔 부모의 한 사람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아들 딸이 "운동선수 될래요"라고 했을 때 어떤 대답을 할까. 그것도 비인기 종목으로 큰 대회 때나 반짝 관심이 가는 분야라면. 아마도 "그거 해서 먹고 살겠나" "너무 힘든 길이다" 정도로 일축했을 것이다. 설령 재능이 있고 주위서 권유를 한다손치더라도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허락하기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 않은 부모 입장에서 보면 보수적 편견으로 비칠 수 있으나 필부의 보통 부모들 생각은 거의 어슷비슷할 것으로 여겨진다.
늦둥이 외아들의 천식을 고치려 다섯 살 때 수영장으로 이끌었다가 초등학생 때 선수로 입문시킨 박태환의 부모는 과연 어땠을까. 올림픽 최초로 여자펜싱에서 은메달을 딴 남현희가 처음 검을 쥔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그 부모는 흔쾌히 받아들였을까. 동양인으로서는 도저히 그 벽을 넘기 어려운, 족탈불급으로 여겨지던 종목이 아닌가. 미루어 짐작건대 아이의 불안한 장래 걱정으로 "그래 한번 해봐라"라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고민과 번뇌가 많았을 것이다. 400m서 금 부담을 던 박태환이 200m 경기 때 응원하던 아버지가 "이렇게 편안하게 지켜본 게 처음"이라고 했던 말에서 애끓인 지난 10여 년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결코 녹록지않은 길을 그들은 걸어왔고 그 대가로 오늘 그 자리에 있다.
일류 선수를 배출하기까지에는 여러 조건이 조화롭게 형성돼야 한다. 본인의 천부적인 자질과 소양, 성취욕 등 내재한 특성을 비롯해 훌륭한 지도자의 조력과 물질적 뒷받침 등이다. 국제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은 경제성장과 국력신장의 한 결과로도 분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욱일승천하는 우리 선수들의 분전을 접하면서 더욱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런 기재들을 키워낸 부모의 뜨거운 관심과 열정, 헌신적 뒷바라지이다. 메달리스트뿐만 아니라 베이징에 자녀를 대표선수로 보낸 수많은 부모들. 개개인의 형편을 떠나 제2, 제3의 박태환 아버지 어머니로 똑같이 외롭고 힘들게 기약없는 시간과 싸워왔을 것이다.
학벌 돈 권력을 쫓아 교육열이 뜨겁다 못해 과열로 넘쳐나는 우리의 현실에서 장래가 보장되지 않는 운동선수로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가 아니면 힘들다. 잠재력을 발견하더라도 아이를 험난한 기초 종목의 체육계로 내몰기는 어려운 것이 부모들의 인지상정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외면하는 가시밭길로 들어서 끝까지 믿고 밀어준 선수 부모들 앞에서 고개가 숙여진다. 흔히 자녀에게 "그래도 공부가 제일 쉽다"고 얘기하는 부모로서 더더욱 그렇다.
누구에게나 숨은 능력이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 내재한 능력이 갑자기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다. 극심한 고통과 한계 상황을 거치면서 비로소 잠들어 있던 잠재력이 밖으로 뛰쳐나오게 돼 있다. 숨은 재능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재발견이며,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보편적 진리가 오늘따라 천금의 무게로 다가온다. 꿈을 이뤄간다는 것은 싫증과 실패의 두려움을 이겨낸다는 것과 일맥으로 통한다. 우리 대표선수와 그 부모들이 이를 체험하고 극복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새롭게 교훈을 얻는다. 놀라운 세대를 탄생시킨 위대한 부모들에게 금메달의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