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교육방송 미술 강의에서 밀레의 만종에 관한 놀라운 설명을 들었다. 부부가 들판에서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 화가 달리는 이 그림이 왠지 쓸쓸하고 불안해 보인다면서 일반적 해석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자외선 투사를 해본 결과 땅에 놓인 바구니에 아이가 담겨 있었다. 이 그림은 하루 농사일을 무사히 마치고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아이를 땅에 묻으며 슬픔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만종을 보며 추수와 은총의 따사로움을 느꼈지만, 이것은 편견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스스로 그림을 보고 느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해석을 따라갔던 것이다.
사회 정책은 그림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의 판단은 더욱 취약하다. 최근 촛불 시위에 대해 사람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승리, 위대한 국민의 저항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시위가 민심의 표출이라 해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한반도 대운하는 이제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미국 쇠고기의 안전 문제나 공기업 민영화 그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같은 문제는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고 진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그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거나 서로 충돌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쇠고기 수입에 이어 촛불집회가 여타 사안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촛불 시위가 온갖 정책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이어진다면 그 시위의 본질은 흐려지는 것이다. 또한 정권퇴진 투쟁 역시 국민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추진한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진실은 숫자와 아무 상관이 없다. 지금 국민의 삼분의 이가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의견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밀레의 만종에서처럼 견해가 특정한 방향으로 쏠려간 결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판단의 조작에 선뜻 동의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내가 행동을 스스로 결정한 것이지 타인의 말에 끌려 다닌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바일 미디어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정보가 계속 들어오고 있으며, 그것들은 모두 정치성을 띠고 있다. 방송 시사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토론방뿐 아니라 무심히 화면을 스치는 광고나, 여기 '아침 숲길'에 실리는 잔잔한 생활 수필도 특정한 정파나 이념을 선전하고 옹호하는 기능을 한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예술도 그렇다고 한다. "좋든 나쁘든 연극은 항상 세계의 특정한 모습을 비춰준다. 어떤 식으로든 관객의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주지 않는 연극은 없다." 우리에게 밀려드는 모든 정보는 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정신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 차원에서 전염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인이 타인이라는 것을 모른다.
대중의 의견은 수정하기가 힘들다. 첫째, 인간은 의견의 수정을 존재의 부정이라 간주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결정한 줄 착각하여, 다른 사람에게 틀렸다는 지적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가 부정된 듯한 아픔을 느낀다. 만약 우리의 판단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기존의 의견을 그렇게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대중 집회는 공통의 신념을 단단하게 만들어 거기에 참여하거나 참관하는 사람은 더욱 사고의 전환이 어렵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정치 집회는 자기 확신을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종교 의식과 흡사하다. 신앙 집회에서 신도들은 찬양과 봉헌을 거행함으로써 주관적 믿음을 객관적 진리로 변환하듯이, 촛불 집회에서 시위자들은 촛불을 켜고 구호를 외침으로써 자신들의 신념과 행위가 정당하다는 확인을 주고 받는다. 셋째, 다수의 의견은 옳든 그르든 정치인들이 수용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바라본'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 유지를 위해 마침내 '시민의 요구'에 응하기로 결정한다. 쇠고기 문제에서 우리 정부가 어설프게 대응했다가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가 확산되어 다른 현안들에까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선다면 어찌될 것인가. 철저하게 검토, 또 검토해야 할 민감한 사안을 시민들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할 것인가. 인간은 외부의 메시지에 조종되는 정보 조작의 동물이다. 그래서 의견을 바꾸어 주려면 그들의 신념과 충돌하는 반대의 정보를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커다란 용기가 요구된다. 물론 그 반대의 정보와 바뀌어진 의견조차 진실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김민기, 친구)
경성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