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릉, 탕탕!!"
조용하던 뱃머리를 엔진 음이 뒤흔들어 놓았다. 몇 안 되는 선객을 풀어놓고 잠시 정박해 있던 성공호가 시동을 건 것이다. 그러자 잔교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정원 48명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쓰인 선실 벽면 위의 사각 창으로 선장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서둘러 배에 올라타라는 무언의 표정이었다. 선실 측면에 검은 글씨로 쓰인 남포동 자갈치↔영도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포동과 영도 대평동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육로로는 이 두 곳을 이어주는 버스가 없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이 성공호다. 12t의 성공호는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후 30분까지가 운행 시간이다. 하루에 60번 왕복한다. 요금은 900원. 버스 요금이 오르면 이 도선의 삯도 인상된다. 시간은 약 10분. 나는 자갈치에서 영도로 가기 위하여 그 도선을 타고 있었다. 짧은 배 여행이지만 이 배 위에 올라타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느낌이 든다.
영도와 육지를 잇는 도선은 그 역사가 퍽 오래되었다. 영도에 도선이 운행되기 시작한 것은 1876년부터다. 동력은 인력이었다. 노를 저어 물살을 헤쳐가기에는 힘든 거리다. 그러던 것이 1900년부터 발동기선으로 변경되었다. 그때까지 개인소유였던 도선은 1919년부터 부산부가 매수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영도다리가 개통될 1934년 당시, 도선은 수환, 상반환, 송도환, 목도환, 주갑환 등 총 다섯 척이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운항되었다. 총 선원은 32명. 뱃삯은 5전. 하루에 왕복하는 선객은 1만여 명이었다. 1930년도 부산의 인구가 14만6124명이었다고 하니 부산 인구의 7% 정도가 매일 배를 타고 영도를 드나든 셈이다. 영도다리의 건설은 당시 부산사람들의 숙원이기도 했다. 이 도선들은 영도다리가 완공된 1934년 11월 30일 무렵 사라지게 된다. 물론 내가 타고 있는 이 성공호는 그 후에 생긴 것이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자 해안에 줄지어 서 있는 낮은 건물 뒤로 도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마치 항공모함처럼 둥둥 떠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표류하는 난파선의 선원이 여명 속에서 만난 이경(異境)의 섬처럼 둥둥 떠 있는 물 위의 부산을 아득히 바라보고 있었다. 낯설어서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런 낯선 부산 풍경을 두어 군데 더 알고 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장유 인터체인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장유 벌을 바라보는 길이 왼쪽으로 크게 휘감아 돌면서 오르막길로 치고 올랐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다. 금정산과 백양산, 승학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의 기슭에 고층 집합주택과 작은 집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는 인경(人境)이 보인다.
농경시대의 전원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 밥 짓는 냄새가 날 것 같은 이 풍경은 정보화 시대의 거대 도시 부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낯선 모습이다. 그래서 매번 이 길을 타고 부산으로 되돌아올 때에는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시간여행자가 된 느낌이다.
질주하는 고속도로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이 배에서 멀리 보는 부산이다. 특히 내가 좋아했던 것은 지금은 다리로 연결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녹산과 가덕도 사이를 오가는 도선에서 보는 부산이다.
외양포에서 출발하는 그 도선은 대항과 천성, 장항 등의 포구를 거쳐 녹산으로 다가선다. 가덕도의 마지막 포구를 떠난 즈음,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간다. 낙동강이 토해놓은 비옥한 평야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지고 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줄기들이 하늘금을 그으며 바다로 달려가고 있고 그 산자락 아래로 낙동강 하구 평야가 넓게 펼쳐지는 풍경이 한눈 가득 찬다. 이 대륙적 풍경은 미어터지도록 비좁은 부산의 끝자락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정도로 넉넉하다. 배가 포구에 접안하면 나는 대륙을 말달리는 혁명가처럼 도선을 내리는 것이다.
바람이 제법 불어왔다. 컨테이너선을 예인하는 터그보트가 지나가자 도선은 다시 예민하게 흔들렸다. 부산은 미래 해상 도시처럼 둥둥 떠 있었다. 프랑스의 작가 장 그르니에(Jean Grenier)는 이렇게 말한다.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부산은 행복의 섬이었다. 부산이 아득히 멀어져가고 있었다. 다가갈 수 없는 행복의 섬처럼 멀어지는 부산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