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을 넘긴 지가 엊그제 같은데 나는 벌써 할아버지가 되었다. 지난해 동생이 손자를 보는 바람에 얼떨결에 얻은 존칭이어서 어색하고 쑥스럽기가 그지없다. 종손은 벌써 아장아장 걷고 있으니 녀석의 입에서 큰할아버지 소리가 터져 나올 날도 머지않았다. 그런 사태를 막아보려고 며칠 전 보았을 때는 녀석의 눈길을 슬슬 피해 다니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행복한 도피는 얼마 가지 못할 것이고 나는 곧, 응 그래, 어서 와 이리 와, 하며 팔을 벌리게 될 것이다. 좀 이르긴 하지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공로패와 같지 않은가.
이미 반백이 되어버린 내 머리칼의 상태로 볼 때 공공장소에서 모르는 이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날도 머지않았다. 그러나 그 국면을 스스로 두려워하고 있고 가능하면 조금 늦게 가닿고자 하는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늘의 노년이 사회적으로 별 대우를 못 받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어른을 공경하던 동방예의지국이 아니었던가. 돌이켜보니 수천 년을 이어온 그 예절이 간데없다. 잘못을 나무라는 어른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고, 대들고, 폭행을 행사하고, 급기야 칼부림을 일삼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노년세대의 과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곡되고 무력한 역사를 만든 장본인이었으며 부정과 불합리의 가치를 만연시킨 주역이었으며 모든 성공을 돈으로밖에는 환산할 수 없었던 불행한 세대였다. 그러나 역사적 불운과 절대궁핍의 질곡 아래 놓였던 앞 세대의 정황에 놓인다면 우리 대다수도 그런 행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라고 손을 흔드는 신세대들에게는, 월급에서 공제되는 과다한 연금이나 건강보험료 때문에 노인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뺏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 정황은 심심찮게 실생활에서도 목격된다. 자리 양보를 않는 것, 공손하게 답변하지 않는 것, 두렵고 존경해야할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서 하찮은 존재로 생각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어제 저녁의 산책길에서 일군의 중학생들을 보았다. 공원벤치에 앉아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무심히 지나쳤는데 곧 이어 터지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나의 자의식은 그들의 웃음소리가 일종의 야유로 들렸다. 이렇게 막 놀고 있어도 아무 소리 못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야유. 나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런 상태로 장차 노년이 된다면 나는 참으로 무기력하고 쓸쓸한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이다. 자긍심과 위엄을 버린 인간은 구멍이 숭숭 뚫린 헌 가죽부대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그 가죽부대로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으며 아무 것도 꺼내 보일 수 없을 것이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자신들을 잔혹하게 찔러 죽인 자식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범행 증거가 될 아들의 손톱을 삼킨 어머니 말이다. 모르긴 해도 그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부모가 그리 했을 것이지만 노년의 가치가 그와 같은 희생의 미덕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런 무절제한 사랑이 분별없는 인간을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부모를 자신의 원천이자 공경해야 할 대상이 아닌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되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 더 나아가 그 몇 배의 부담을 감수하며 자녀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부모들이 주위에는 의외로 많다. 그렇게 할 수 없는 나는 무척이나 무능한 아버지이며 더 나아가 무척이나 비정한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과도한 희생과 집착이 문제가 될 것이다. 부자의 연으로 엮이기는 했으나 사실 개개인은 단독자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있다. 과도한 집착은 후세들의 자유로운 진로를 막고 향후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바라는 빌미로 작용한다. 이미 저만큼 멀어진 자기 세대의 논리로 계속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오늘의 세상을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행착오를 덜어주는 조언자, 풍부한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참 어른으로서의 노년을 만나고 싶다.
닮고 싶은 모범으로, 극복하고 싶은 대상으로서의 노년의 가치는 영원할 것이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있어 설레는 5월이다. 봄날 햇볕이 좋기는 하지만 볕이 따가울수록 그늘의 필요성은 더 절실해지는 법이다.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것이라 믿고 날뛰는 어린 것들을 가만히 주저앉히는 위엄, 환장할 분출을 잠시 쉬게 할 노거수의 그늘 같은 참 어른의 위엄이 그립다. 시인